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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오피니언 > 간증문 등록일 2006-09-08
작성자 관리자 (admin)
[북한성도 간증집] 2. 스탈리아 내가 군대 말이냐?
1. 성탄에 비유하라
2. 스탈리아 내가 군대 말이냐?
3. 공룡 알 구워먹기
4. 당이 결심했다. 네 놈들 해라
5. 이놈들아! 내 아들 내놔라
6. 질사 반공의 첫걸음
7. 원수의 간부 놈들
8. 예수님은 과연 누구인가
9. 돌격의 앞장엔 예수님 있다.
10. 하나님 앞에 네가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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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 있지요. 고생이 사람을 철들게 한다. 그런데 제가 알기에는 고생이 자칫하다가는 인간을 타락 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도 이름 같이 곤난과 괴롬에 이를 갈면서도 하늘의 하나님 저주하는 죄악을 범하는 게 인간의 모습이 아닙니까? 그러니 고생도 인간을 철들게 하는 방향으로 가야지 타락하게 하는 방향으로 가게 한다면 슬픈 일이지요. 말하자면 예수님 밖에서 고생은 인간을 타락시킨다 이 말입니다.
제가 왜서 이 말을 하는가 하면 어머니의 천대와 멸시 아버지의 나에 대한 강한 요구心, 이로 하여 난 너무도 시달리다 나니 어떨 땐 똥궁리를 하는 겁니다.
야, 나도 장가갔으면 좋겠다, 옛날에는 열 살만 넘기면 장가갔다는데 내 나이 인젠 열 살을 넘겠는데 장가가면 안 되나? 라는 생각 하루에도 열 번도 더한 겁니다. 이 생각에 아마 열 살을 갓 넘긴 아이가 연애한 건 공화국 북반부 안에 제가 처음일 겁니다. 그때 난 학교 소년단 위원장 했지요. 한국에 학교에 본다면 학생회총회장과 비슷하지요. 학생회 총회장을 하니 연애하기도 아주 유리한 겁니다. 왜냐하면 북한에서는 어릴 때부터 풍기문란 말하자면 부화방탕을 막는다, 학생들도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갈라 남자학급, 여자학급으로 만든 겁니다. 그러니 남자 여자 만나서 이야기하려야 할 수가 없는 거죠. 그런데 전 학교학생 회장이니 여자나 남자를 제 마음대로 불러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는 겁니다.
기회는 좋은 기회라 장가가고 싶은 생각은 자꾸 나지 그러니 내 아내 될 만한 여학생이 누군가 살펴보는 겁니다. 제가 이런 말하면 오해할 수도 있는데 오해하시지 마십시오.
방금 말씀드렸지만 고생이 자칫하다 사람을 타락 시킬 수 있다 하지 않았습니까?
어머니의 천대와 멸시 “춘양전” 영화의 ‘변학도‘ 같은지라 이를 보면 하자면 장가가는 것이 상책이다, 이를 생각하였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또 어머니가 나에게는 미친 들개 같이 놀아대도 아버지에게는 아주 그냥 영화에서 나오는 다정한 부부 그대로 인겁니다. 그러니 나도 장가가면 아내가 날 저렇게 살뜰하게 대해줄게 아니야 라는 생각에 장가가야 한다. 마음먹은 겁니다. 또 이내 키가 그 때 165cm을 훨씬 넘었으니 모르는 사람에게 20살이라 해도 곧이들었거든요. 어쨌든 나도 연애를 해서 여자의 사랑을 맛본다는 생각에 학생회 간부 중 여학생들은 이 학생, 저 학생 톡톡 튕겨 봤는데 내 말에 도무지 눈치를 못 채는 겁니다. 일이 이렇게 되니 야야 이것도 아니구나 하고 그만 실망하고 있는데 저보다 두 학년 선배인 여학생이 나를 끔찍이도 위해주는 겁니다. 그런데 그 여학생은 민청간부였지요.
북한 응원단

북한의 학교들엔 14살 아래는 소년단 조직성원이고 14살 이상은 민청조직성원입니다. 이 조직구조를 보면 처음 소년단에 들어서 잘 훈계되면 민청원 되고 민청원에서 잘 훈계되면 당원이 되는 겁니다. 당원이 될 수 없기에 준비 안 되여 30살 되면 노동자는 직업 동맹원 농민은 농근 동맹원이 되는 겁니다. 직업맹원이나 농근맹원은 사실상 모든 권한 밖에 밀려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사람답게 산다고 당에 입당하느라 사람들 무진 노력하는 겁니다. 조직구조는 이렇고 어쨌든 저보다 두해 선배 여학생이 나를 무던히도 좋아하는 거죠. 처음에 제가 누나, 누나 한 거죠. 그런데 알고 보니 여학생이 나보다 두해 선배라 해도 나와 한살 차이밖에 안 되는 겁니다. 그래 누나, 누나 하다가 애라, 모르겠다, 이름을 막 부른 겁니다. 헌데 제가 가만히 보니 이 여자들이 연애하는 데는 남자들보다 아주 정서적이면서도 성감적이고 발달한 겁니다. 그러기에 여자가 남자보다 두해를 더 앞질러 발달했다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하여간 한해 나보다 장국을 더 먹은 여학생이라 모든 일을 이 학생이 조직하는 겁니다.
‘야, 오늘 좋은 영화하는데 같이 구경 가자’라고 여학생이 나보고 요구합니다. 여학생이 이런 요구를 할 때면 ‘오늘야 누나 함께 재미나는 순간순간을 역어보게 됐구나’ 생각하면서도 나 머리를 가로 젓습니다. 왜냐하면 영화관람표를 살 돈이 내게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학생이 무슨 일 있냐? 따집니다. 그의 물음에 영화관람표 살돈 없다 어떻게 망신스레 말하겠습니까? 그래 우물쭈물하면 여학생은 무작정 영화관람표 두 장을 사겠으니 영화관에 함께 가자는 겁니다. 차라리 잘됐다 나는 마음속으로 함성을 지르고는 못이기는 척하며 그 학생과 함께 영화 관람하러 가는 겁니다. 학생복 입은 학생은 영화관에서 들여 놓지 않으니 아버지의 못을 가만히 훔쳐 입고 영화관에 가는 거죠. 참말이지 그 여학생은 내 학교기간 나의 위로가 되어 준 여인이었지요. 이 학생이 더욱더 극성스레 날 사랑한 계기가 있었답니다.

북한에서도 꽃피는 봄날이 되면 전 학교 적으로 등산놀이를 조직하곤 했지요. 맛있는 음식이랑 해 가지고 가서는 보물찾기 놀이와 음악회도 하고 그리곤 가지고간 음식을 함께 펴놓고 학생들 모여 앉아 맛있게 먹으며 하루를 즐기는 거죠. 이 즐거운 날 등산가는 것 유독 나에게는 아마 귀양 가는 것보다 더 싫게 느껴진 겁니다. 왜냐하면 이 등산놀이가 어머니의 가시 같은 사랑으로 인하여 그나마 남아 있던 즐거움까지도 깡그리 빼앗아버리곤 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건 별 문제가 아닌데 이 등산용 음식이 나에게는 가장 큰 비극을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언제 학생들 등산놀이 간다 하면 다른 학생들의 학부모들은 자기 아이들을 남 못지않게 해 준다 부지런히도 들끓습니다. 쌀을 가루 내온다, 찬감을 마련 한다, 야단법석이죠.

그런데 유독 저의 어머니만은 전혀 무감각인지 저기압 상태 안에 들어 반응이 없는 겁니다.
돌부처같이 집 안에 떡 벌치고 앉아 김일성의 사상을 적은 책만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무감정 상태의 어머니를 바라보며 난 미리미리 판단합니다. 이번 동산 놀이에도 나에게 스탈린 아저씨가 북한에 제공해 준 소련제 말먹이용 시커먼 밀쌀 밥이 전부겠구나, 이 생각 함께 정부정책에 대한 불만이 막 차오릅니다. 나라에서는 알곡 1000만톤, 1200만톤씩 땅땅 생산 한다 큰소리치는데 왜서 먹지 못할 소련제 말먹이용 밀쌀을 수입 해다 우리에게 나누워 주워 날 이렇게 괴롭히느냐? 정부는 이 나라 국민을 군대 말로 생각하는 게 아니냐?
하여간 격분하고 기분이 되겐 없는 거죠. 그러나 어떠했겠습니까? 내가 속상해한다고 동산놀이를 못하게 막겠습니까? 어쨌든 괴롭고 속상한 날을 보고야 마는 겁니다.
제가 등산가는 그 날이면 어머닌 오래도 밥을 짓습니다. 입쌀50%, 밀쌀 50%, 그 밥에서 입쌀 쪽으로 아버지 아침 밥 뜨고 동생의 도시락 뜨고 나중에 내 도시락 뜨고 하면 입쌀 알 셈세기 할 정도로 뜨문뜨문 섞인 소련제 말먹이용 시커먼 밀쌀 밥이 도시락에 담겨지는 겁니다. 그래도 이 날만은 굶주린 이놈아, 콱 처먹어라, 는 심보인지 중국 농민용 벤또(도시락)에다 시커먼 밀쌀 밥을 밥주걱 목이 부러지게 푹푹 퍼 담아 꿍꿍 다져서까지 담아 줍니다. 중국 농민 벤또가 얼마나 큽니까? 담배한대 길이의 높이에 일반적으로 쓰는 학습장만한 크기의 도시락이 아닙니까? 그런데 어머니의 지옥 불 같이 뜨거운 배려가 나에게는 드디어 불행스러운 겁니다. 왜냐하면 다른 학생들은 모두가 흰쌀로 만든 갖가지 떡에 맛있는 고기반찬이랑 가지고 와 맛있게 짭짭하는데 시커먼 통밀 밥에 도시락만한 모퉁이데 뚝 찍어 발라놓은 고추절임 담겨진 도시락을 도대체 어떻게 펴놓고 먹는단 말입니까? 완전히 백조무리 속의 타조 새끼 신세라 해야 하겠지요. 창피함에 우물우물해서 밥을 얼른 먹어버려야겠는데 이 소련제 말먹이용 밀쌀 밥의 특징은 식기만하면 모래알 같이 딴딴한데 빨리 먹을 수가 있습니까? 또 당시 배고픈 생활형 내가 아까운 밥을 버릴 수는 더더욱 없습니다. 그러니 화가 나는 거죠. 그래도 배다른 형제라도 형제도 형제인거죠. 내 도시락에 밥을 담는 어머니에게 동생이 외칩니다.

“어머니 형님이 학교 소년단 단위회장이라는데 이런 밥을 어떻게 창피스레 학생들 앞에서 펴놓고 먹습니까? 어머니 입쌀은 두었다 어데 쓰자 그럽니까? 형님에게 오늘 같은 날 입쌀 떡을 못해줄망정 입쌀밥이야 왜 못해줍니까?”라고 항의하면 어머닌 아주 태연히도 동생을 타이릅니다.
“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라의 광복을 위해 일본 놈들과 싸울 때 통감자를 소금에 찍어 잡수시며 싸우셨다. 형님이 이런 밥을 나무래서 사람들 앞에서 먹기를 창피해 한다면 앞으로 위대한 수령님께 충실한 혁명전사가 못된단다.”
야, 말이나 못하면 멍청이라 하지 않겠습니까? 전문 앉아서 김일성의 저작책만 보니 말은 얼마나 잘하게요. 어쨌든 어머니는 소련제 말먹이용 밀쌀 밥을 숱한 학생들 앞에서 펴 놓고 먹으라는 겁니다.
숱한 학생들 앞에서 시커먼 소련제 말먹이용 밀쌀 밥을 부끄럼 없이 먹으면 일정시기 일본사람들의 총구를 피해 도망 다니며 어쩌다 토비질로 빼앗은 감자를 불에 구워 소금에 뚝뚝 찍어먹던 김일성처럼 된다는 겁니다. 면도날같이 서슬 푸른 사랑이 담겨진 도시락을 그래도 굶기 보다야 낫지 하는 심정에 어깨에 메고 등산지로 갑니다.
행사를 다 마치고 점심시간이 되면 선생님들은 그래도 학교학생총회장이라 함께 식사하자 잡아끄는 것도 마다하고 난 누가 볼세라 개울가를 따라 남들 눈에 띠지 않는 으슥한 곳으로 갑니다. 그곳에 가서는 밀쌀 밥 한술 입에 떠 넣고는 잔디밭 위에 벌렁 누워 새파란 하늘가를 바라보며 우물우물 백번 씹기 운동을 합니다. 보통 밥은 이삼십번 씹고 넘기면 되지만 마르크스∙레닌의 마귀的 넋이 담겨진 소련제 말먹이용 밀쌀 밥은 백번을 씹어 껌처럼 된 다음 넘겨야지 통밀알이 그대로 뒤로 배설되는 거죠. 글쎄 소처럼 새김질한다면 소화가 되겠는지 대충 씹어 넘기면 전혀 소화가 안 되는 거죠. 그런데 당시 날 사랑해 내 거동만 살폈을 그 여학생이 내가 숲속에 사라지자 살금살금 내 뒤를 따라온 거죠. 그가 나타나자 너무도 급해 도시락 뚜껑을 닫으려 했는데 그만 그의 눈에 소련제 말먹이용 밀쌀 밥이 띄운 거죠. 나의 음식을 보며 여학생은 너무도 억이 막혀 입만 벙긋하고 있더니 엉엉 앉아 우는 겁니다. ‘어쩌면 너희 어머니는 인간이 아니다, 당 책임비서인 너희 집에 무엇이 없어서 이런 날 너희 어머니 이런 밥을 도시락에 담아 보내니...’

그 여학생이 너무도 슬피 우니 나도 설음이 막 북받치는 겁니다. 그런데 전 친어머니와 헤어진 후 그 누구 앞에서든 눈물 흘려본 일이 없는지라 말없이 꾹 참았습니다. 일이 이쯤 되니 여학생은 더욱 극성스레 날 사랑하는 겁니다. 그 때 무슨 생각에 그런 약속까지 했는지 모르겠지만 난 그 여학생에게 내가 이런 멸시와 학대에서 해방되자면 장가가야 한다. 그러니 너 내 아내가 되어 달라고 한 거죠. 그게 그 학생과 난 학교만 졸업하면 결혼하자 약속한 겁니다. 첨부하면 농촌지원시기를 제가 군사대학에 입학하기 바로 전해였지요.
그 해는 중국에서 들여보낸 홍보석 같은 옥수수쌀을 배급 쌀로 내 줄때라 그 해 등산놀이는 역시 어머니가 그 쌀로 밥해 준 겁니다. 그런데 그 해는 당 책임비서인 아버지도 학생들이 등산놀이 하는 것을 시찰해 본다는 의미에서 함께 참가한 겁니다. 난 학생들에게 등산놀이 일과를 집행해 주면서 오늘 점심시간엔 아버질 단단히 꼴 먹이라 결심한 겁니다. 드디어 점심시간이 되자 학교선생님들은 책임비서 앞에서 잘 보여 점수 따기 하려 나를 억지로 저희들이 모여 식사하는 곳으로 끌고 갑니다. 못이기는 척 하며 끌려간 나는 홍보석 알 같은 옥수수쌀밥을 학생들과 선생님들 앞에 펴놓은 겁니다. 마침 아버지가 간부들과 함께 학생들이 가져온 음식을 본다며 다니는 거죠. 선생님들과 학생들은 내 도시락에 담겨진 옥수수밥을 들여다보면서 이상한 듯이 머리를 기웃거립니다. 책임비서 아들이 이런 날에 옥수수밥을 도시락에 담아 가지고 올 수는 없겠는데 하면서 저 옥수수는 특수한 옥수수쌀인가? 라는 눈치들인 겁니다. 너무도 이상한지 우리 선생님이 저에게 묻습니다. 이 쌀밥이 무슨 쌀밥인가구요. 그래 무심결에 전 지나가는 소리로 이 옥수수쌀은 우리 수령님께서 잡수시던 옥수수쌀로 지은 밥이라 했지요. 그런데 이걸 보십시오. 나는 무심결에 수령님께서 잡수시던 옥수수쌀이라 할 말이 없어 그렇게 말했는데 선생님들과 학생들은 우리 아버지가 책임비서이니 그 쌀로 수령님으로부터 선물 받은 아주 뜻 깊은 쌀인 줄 알고 서로 맛보겠다, 난리 통을 번지는 겁니다. 북에서는 책임비서쯤 되면 김일성이나 김정일이 좋아하는 음식 같은 것을 선물이라는 명칭아래 보내주곤 하는 예가 있답니다.
가령 김정일이 검정 당나귀 고기를 좋아하니 명절 때나 국가적인 행사 때에는 간부들에게 암 검정 당나귀 고기를 조금씩 선물로 보내주곤 하지요. 아마 선생님과 학생들 그 옥수수밥이 그렇게 선물로 내려온 옥수수쌀로 만든 밥 인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난 사실 아버지를 숱한 학생 대중들 앞에서 깨깨 망신시키려 그 밥을 펼쳐 놓았는데 소위 수령님의 사랑이 깃든 옥수수쌀밥을 먹어보지 못한 학생들은 수령님의 넋이 깃든 옥수수쌀밥을 먹어보지 못했다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 우는 학생들까지 있는 겁니다. 참 소 웃다 꾸러미 터질 노릇이라 할지 그 덕에 난 학생들이 저마다 담아주는 흰떡에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도 먹었습니다만 일은 아주 싱겁게 된 거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전 그 때 늘 이런 생각해 본겁니다. 사람이 어떻게 세상에 생겨났을까 그런데 사람이 물과 공기만 먹고 살게 생겨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가? 사람이 물과 공기만 먹고 산다면 당에서 말하는 것처럼 혁명하기 싫어하기에 밥을 먹고 살게 만들어졌는가? 밥을 먹지 않고도 살 수 있다면 이런 괴로움까지는 당하지 않으련만 사람은 너무도 불공평하게 생겨났구나, 이런 생각을 하며 어머니가 가증스럽고 어머니를 저런 가증스런 인간으로 만드는 김일성 사상이 사망과 똑같이 느껴지곤 한 겁니다. 이런 어린 시절의 생활을 통해 제가 분명히 느낀 것은 강요나 원하지 않는 고생을 강제적으로 시키는 것 이런 일로 결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 된다 생각하면 그건 착각이라 난 말하고 싶습니다.
우선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무한한 사랑만이 인간을 새롭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하기에 난 북의 영혼들에게 할 수 있는 한 잘 먹고 잘 입히려 합니다. 이것이 곧 전도가 되더군요. 주 예수와 함께 사는 삶 위에 난 언제나 사랑을 베푸는 삶을 살아 주 안에서 온전해지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겁니다. 제가 이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저를 위해 많은 기도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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