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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한국일반 > 사회/문화 등록일 2006-07-13
작성자 관리자 (admin)
국제화 시대의 국민주권론 재해석
오 동 석
아주대 교수, 헌법학

1.1. 머리말

대한민국헌법상 외국인이 참정권 주체냐는 문제를 논할 때, 그 외국인은 일정 기간 이상 대한민국에 생활근거를 두고 있는 정주외국인을 가리킨다. 이때 ‘정주’의 사전적 의미인 "일정한 곳에 자리잡고 삶"은 바로 그 곳에서 정치적 공동체의 문제에 참여하는 근거가 된다는 점을 잘 드러내고 있다.
정주외국인이란 ‘정주하고 있는 사회에 생활의 근거를 가지고 있기에 그 생활실체에 있어서 자기의 국적국까지 포함한 어떤 나라보다도 정주국과 깊이 결합해 있고, 그 점에서 정주국에 거주하는 정주국의 국민과 동등한 입장에 있지만 정주국의 국적을 갖지 않는 자’로 정의할 수 있다.
정주외국인에게 참정권을 인정하는 근거로서는 인권의 관점과 국민주권의 관점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2. 인권의 관점에서: ‘국민의 권리’에서 ‘인간의 권리’로

우리나라에서 통설적인 입장은 참정권이 국민주권원리에 따라 국민의 권리이므로 외국인에게는 인정되지 않는 것으로 본다. 즉 선거권과 피선거권의 주체인 국민이란 대한민국의 국적을 가진 내국인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때 외국인은 대한민국 영토 안에 있으면서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는 요건을 정한 법률’(헌법 제2조 제1항)인 국적법상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지 않은 자를 말한다. 즉 외국 국적자이거나 국적 없는 무국적자이다. 현행 「공직선거법」도 “19세 이상의 국민”(제15조)에게만 대통령 및 국회의원의 선거권을 인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도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민주정치에서 주권자인 국민에게 필수적인 수단으로서 가장 중요한 기본권임을 확인하고 있다. 그리고 평등권에 대한 외국인의 기본권주체성을 설명하면서 평등권을 인간의 권리로 인정하지만, 그것이 "참정권 등에 대한 성질상의 제한 및 상호주의에 따른 제한"이 있을 수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즉 참정권은 성질상 인간의 권리가 아니며, 그에 따라 참정권에 있어서 외국인 차별은 평등권 침해 문제를 야기하지 않음을 전제하고 있다.
한편 「인권에 관한 세계선언」은 “사람(everyone)은 누구를 막론하고 직접으로 혹은 자유로이 선출된 대표를 통하여 자국(his country)의 통치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제21조 제1항)고 규정함으로써 참정권이 인간의 권리임을 인정하면서도 그 보호범위를 ‘자국’에 한정하고 있다. 그리고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은 “모든 사람”이 아닌 “모든 시민”의 권리로 참정권을 규정하고 있다. 물론 ‘자국’ 혹은 ‘시민’을 아예 국적 개념과 연계시키지 않거나 또는 그것을 ‘정주외국인’에 연계시키는 해석을 꾀할 여지는 있다.
많은 헌법학자들은 기본권성질설에 따라 인간의 권리로 볼 수 있는 기본권에 대하여는 외국인에게 기본권주체성을 인정하고 있다. 헌법이 외국인의 기본권주체성을 명시적으로 부정하고 있지 않으므로 해석을 통해 그 흠결을 보충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헌법의 ‘국민’ 표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권리에 해당하는 기본권은 국적을 불문하고 인정해야 함은 논리적․현실적 보편성을 띠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외국인에게 기본권주체성을 인정하는 헌법적 근거는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는 헌법 제10조 제2문이다. 그것은 기본권이 자연권으로서 헌법상 기본권 규정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권리를 헌법은 단지 문서로써 재확인한 것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헌법 제2장의 제목이 ‘국민의 권리와 의무’이고 기본권 조항의 주어가 대부분 “모든 국민”임에도 불구하고 헌법해석상 외국인의 기본권주체성을 부인하지 않으면서 ‘인간의 권리’로 볼 수 있는 기본권을 외국인에게 인정하는 것이다.
반면 성질상 인간의 권리로 볼 수 없는 기본권을 외국인에게 인정하는 헌법적 근거는 헌법 전문과 제6조 제2항에서 찾을 수 있다. 즉 헌법이 “…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라고 전문에서 세계주의 내지 국제협조주의를 표방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제6조 제2항에서 “외국인은 국제법과 조약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 지위가 보장된다.”고 규정함으로써 상호주의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헌법학계 다수설은 ‘국제법과 조약’을 헌법보다 하위규범으로서 법률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는 견해를 취하므로, 인간의 권리 아닌 기본권을 외국인에게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는 최소한 입법정책의 문제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참정권을 인간의 권리 아닌 국민의 권리로 보는 경우에도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외국인에게 참정권을 인정하는 것이 최소한 위헌은 아닐 것이며, 기본권의 최대한 보장이라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바람직할 것이다. 따라서 “참정권도 전국가적 자연권이 헌법에 수용된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일정한 조건을 갖춘 장기체류외국인에게는 호혜주의적인 입장에서 단계적으로 선거권을 부여하는 것이 이론적으로나 국제적인 조류에도 부합할 것”이라는 홍성방의 견해는 타당하다.
현실적으로는 최근 외국인 노동자가 증가하면서 그들의 정주화 현상이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인권보장은커녕 인권침해가 빈번함을 고려한다면, 인권보장을 위한 수단적 기본권으로서 참정권을 인정할 필요도 있다. 외국인이 국가에 대해 미칠 악영향 가능성, 특히 장래 수적 팽창에 따른 우려감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그 정도로 정주외국인이 증가할 리도 없거니와 외국에 비해서는 현저히 낮은 비율이어서 실제 정치적 영향력을 크게 발휘하기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이 반드시 부정적인 방향으로 전개될 이유도 없다
아울러 정주외국인의 참정권 부정은 국적선택권과 연관이 있다. 「인권에 관한 세계선언」 제15조는 "①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국적을 가질 권리를 가진다. ② 누구를 막론하고 불법하게 그 국적을 박탈당하지 아니하여야 하며 그 국적변경의 권리가 거부되어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함으로써 국적선택권을 보장하고 있다.
헌법은 명시적으로 국적선택권을 규정하지 않았지만, 학설은 거주이전의 자유(제14조)에 '국적 이탈 혹은 변경의 자유'가 포함되어 있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기본권성질상 국적선택권을 외국인에게 부정할 이유가 없으며, 국적법도 일정한 요건을 충족한 외국인에게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물론 "개인의 국적선택에 대하여는 나라마다 그들의 국내법에서 많은 제약을 두고 있는 것이 현실이므로 국적은 아직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으로서 귀화하여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은 참정권을 인정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참정권을 부인한다면, 그것은 국적선택권에 대한 제한이 된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의 국적을 취득하지 않을 수 있는 소극적 권리를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비록 개인의 자유의사에 따른 선택의 문제로 맡겨져 있기는 하지만, 이미 대한민국에 생활근거지를 두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그에 대한 제한이 헌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지를 검토할 필요는 있다.
적극적으로 국적선택권의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은 국적법상 이중국적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정주외국인의 이중적 특권임을 비판하는 견해가 있다. 국적국와 정주국 양쪽에서 참정권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국적국과 정주국이 다름으로써 생겨나는 부가적 효과일 뿐 하나의 국가내에서 이중특권 문제는 생겨나지 않으며, 실제 각각에서의 참정권 행사는 일정한 제약을 안고 있다. 양국에서 모두 소수자로서의 핸디캡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1.3. 국민주권의 관점에서

그런데 문제는 국민주권원리이다. 참정권의 주체를 국민에 한정하는 국민주권원리 전통을 비판하면서 '주권자가 될 자'가 국민이어야 하므로 정주외국인까지 국민 개념으로 포섭하려는 견해는 주로 일본 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먼저 ‘국적보유자 또는 국민’을 주권의 주체로 보는 nation주권에서는 외국인의 참정권을 부인하지만, ‘유권자 또는 사회계약참가자의 총체’인 인민을 주권자로 설명하는 peuple주권에서는 외국인의 참정권을 요청한다는 견해가 있다.
두 번째로 국민주권 원리는 치자와 피치자의 동일성을 의미한다. 그리고 민주주의 정치는 인민에 의한 자기통치이며 국민주권원리에서 주권자여야 하는 것은 그 정치사회에서 정치적 결정에 따라야 하는 자 전체로서 그 ‘정치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사람’이므로 외국인을 포함시키려는 것이다.
세 번째로 국민 개념이 국적보유자만이 아닌 정주외국인도 포함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즉 국민주권원리는 군주주권에 대항하는 개념으로서 그 경우의 국민은 외국인을 배제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국민주권에서의 국민 개념에는 국적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국민주권 담당자에 대해서 국적보유자가 곧 국민으로 이해하기보다 ‘주권자가 될 자’가 ‘국민’인 것으로 이해해야 하며, 그에 따라 정치적 공동체 내에서 정치적 결정에 따라야 하는 ‘생활실태’를 가진 외국인도 국민이므로 선거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네 번째로 지구민주주의의 관점에서 국민주권원리를 비판하는 견해도 있다. 지구민주주의는 모든 인간에게 지구주민, 국민, 지구시민이라는 3층구조로서 정치적인 자기결정, 자기실현을 보장하는 시스템이다. 따라서 국민주권은 지역을 생활의 본거지로 하는 자가 정치적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는 원리 이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때 국민은 ‘국적보유자’와 ‘국적 아닌 생활의 본거에 거주하는 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다섯 번째로 국민주권이 직접적으로 참정권과 결합되는 것인지가 구체적으로 논증되고 있지 않다는 비판도 있다.
한편 국내에서는 국순옥이 국민주권 자체에 대하여 근본적인 비판을 가하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국민주권이 상정하는 국민은 국적 보유자들의 총체이다. 국가보유자들의 구체적 개별성을 사상하고 그들을 국적 보유자라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무조건 한데 묶어 단일의 의사능력과 행위능력을 지닌 거대 주체, 교과서적 표현을 빌리면 추상적 통일체로 내세우는 것은 현실과 거리가 먼 관념적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한 의미에서 관념적 허구의 산물인 추상적 통일체로서의 국민은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상징기호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는 그 대안으로 주권 주체의 공동체적 이론 구성을 시도한다. 즉 “공동체 구성원을 국가권력과 사회권력의 통일인 공동체권력의 내적 구성에 대응하여 국가구성원과 사회구성원의 통일로 재구성”한다. 이때 공동체는 “자율과 연대의 기본권공동체”이며, 그 구성원은 “자유 평등 그리고 독립의 개별 기본권 주체들”이다. 이들 공동체시민이 시민주권의 주체이다. 이렇게 본다면 정주외국인도 비록 국가구성원은 아니지만 ‘자유 평등 그리고 독립의 개별 기본권 주체들’로서 사회의 구성원이기에 시민주권의 주체에 포함되어 참정권의 주체로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1.4. 맺음말

헌법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제1조 제2항)면서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는 요건은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인권의 보편성 관점에서 외국인의 기본권 주체성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는 추세에 비추어 볼 때는 ‘국적이 국민주권의 내용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주권이 국적의 내용을 규정한다고 본다면 국민주권원리를 국적을 가진 자에 의한 권력의 정당화 원리라고 이해하는 것이 반드시 정확한 수용방식은 아니라는 견해’가 더 적절하다고 할 것이다.
21세기를 앞두고 불기 시작한 세계화 바람 덕택에 자본과 상품은 자유로이 국경을 넘을 수 있었지만 사람의 왕래는 자유롭지 않고 오히려 위축되었다. 한국 사회도 객관적으로는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지만, 그들이 눌러 앉는 것을 바라지 않으며 그들이 우리와 똑같이 인권을 가진 인간임을 쉽게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 이면에는 이미 오랫동안 세뇌된 단일민족의 혈통주의가 자리 잡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홍세화는 이주노동자들이 단식투쟁을 할 때마다 항상 함께 하는 인류학자 에마뉘엘 테레의 말을 전하고 있다. "인류에겐 흑인종, 황인종, 백인종의 인'종'이 없고 다만 인'류'뿐이라고". 정주외국인의 참정권 인정 문제는 폐쇄적 국민주권을 넘어 보편적 인권을 지향하는 헌법적 과제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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