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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선교소식 > 선교학(역사,인물) 등록일 2005-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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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선교 패러다임의 변동과 한국교회 선교 패러다임 변천사와 미래 전망
기독교 선교 2000년 패러다임의 변동
조동진 박사

제1장 LECTURE ONE
기독교 선교 2000년 패러다임의 변동

들어가는 말 :

1. 패러다임이란 무엇인가?

@ 근래에 자주 사용되는 말 중 “패러다임을 자주 전환해야 한다”“21세기를 지향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갖추어야 한다”등등 패러다임이라는 말이 자주 사용된다. 패러다임아란 말은 이미 학계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서 두루 통용되고 있는 단어이다. 그러나 패러다임의 정확한 의미를 알고 그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 패러다임이란 원래 미국의 코마스 쿤(Thomas Kuhn)이 1962년 그의 저서 <과학과 혁명의 구조>에서 주장한 개념이다.

a. 패러다임에 대한 토마스 쿤의 정의
@ 토마스 쿤은 과학 발전이 한 시대의 세계관(패러다임)에서 다른 세계관으로 바뀌는 <혁명적인 과정>이라고 말한다. 과학 혁명은 바로 한 패러다임 내의 과학의 모순으로 위기가 닥친 순간 혁명적인 과학자에 의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b. 패러다임 변동의 예들
@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그 시대의 천동설을 뒤엎은 지동설의 개가이며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의미한다.
@ 뉴튼의 “만유의 인력”이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도 패러다임 변동의 예가 될 수 있다.


2. 역사란 무엇인가? (歷史觀)

올바른 선교 역사관의 정립을 위한 힘의 충돌과 대립의 이해
@ 독일의 역사학적 부르크하르트(J Burkharcit)는 “국가와 종교와 문화는 서로가 모두 이질적이라다”라고 했다.
1) 국가로부터 제약 받는 문화
2) 문화로부터 제약 받는 국가
3) 국가로부터 제약 받는 종교
4) 종교로부터 제약 받는 국가
5) 종교로부터 제약 받는 문화
6) 문화로부터 제약 받는 종교

@ 이 세 개의 힘(power)은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영향을 주며 긴장하고 대립한다.

3. 시간이란 무엇인가?

@ 조지 굴비츠(George Gur Vitch)는 역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다음과 같은 사회적 시 간으로 분석했다.
(1) 과거가 현재에 농후하게 유지된 시간 = <지속적 시간>
(2) 과거가 현재에 지속되는 산발적 위기의 시간 = <기만적 시간>
(3) 현재가 과거와 미래와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는 시간 = <혼미적 시간>
(4)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서로 꼬리를 물고 도는 시간 =<윤회적 시간>
(5) 과거와 미래의 실현이 계속 경쟁하는 시간 = <교제의 시간>
(6) 미래가 현재가 되는 시간 = <추진적 시간>
(7) 현재와 과거거 단숨에 비약하여 미래의 창조 속에 용해되는 시간 =
<폭발적 시간>
@ 이와 같은 시간의 상대성 강조하는 사회적 문화적 이론은 시간과 지도자의 행동 유형자 관계를 시사한다. 창조적 엘리트로서의 선교지도력은 시간을 자원으로 변화를 우군으로 만들어 발전을 성취하는 지도력을 말한다.

어거스틴의 미래와 현재와 과거에 대한 시관
@ 어거스틴은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향하여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미래로부터 현재를 거쳐 과거로 사라지는 것”이라고 했다.
@ 어거스틴의 시관은 기독교의 시관인 동시에 역사관이다.
@ 예언자적 직능을 가진 선교사는 과거 역사의 답습자가 아니라 미래 역사의 창조자라야 한다.
@ 미래를 포착하지 못하는 사람은 올바른 선교 지도자가 될 수 없다.

4. 이 강의의 전개 방향

@ 한국 선교는 올바른 세계관과 역사관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 역사는 변화의 과정을 의미한다.
@ 변화는 시간을 기초로 이루어진다.
@ 올바른 역사관의 정립은 올바른 시관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 선교사는 변화의 선도자요. 새 시대를 여는 역사 창조의 선도자라야 한다.

이 강의에서는 이러한 시관과 역사관 위에서 ‘세계 중심의 이동’과 ‘선교 패러다임의 역사적 추세의 변동’을 근거로 ‘기독교 선교 2000년의 패러다임 변동 추세’와 ‘한국 선교 패러다임 변천사와 선교 한국의 미래’를 전망하고자 한다.

I. 역사 중심의 이동:Shifting the Center of History

1. 홍해중심시대(BC 1921-AD1): 아브라함 이후 예수 탄생까지 구약시대 고대 인류 문명은 항상 홍해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애굽과 고대 바벨론 왕국 1000년, 앗수르 왕국 500년 후기 바벨론 왕국 100년 파사 왕굴 200년 그리이스의 알렉산더 대왕과 그 후손 150년을 거친 후 매카비 왕조 100년을 거쳐 가이사 아구스토의 로마 황제시대 초기까지 약 2000년의 세계는 아시아의 아프리카를 잇는 홍해 중심 시대였다.

2. 지중해 중심시대(AD1-AD1500) 신약시대와 로마제국 시대와 교황 전횡시대까지 기독교 세력이 로마 제국과 교황과 세력을 힘입어 기독교 국가(Christendom)를 이루고 지중해를 중심으로 아시아의 수리아와 아프리카의 이집트와 리비아, 유럽의 그리스와 로마, 스페인으로 확대되고 남유럽에서 중부 유럽과 북유럽까지 확장되던 시대는 지중해 중심 시대였다.

3. 대서양 중심시대(AD1500-2000) 코페르니쿠스 이후 비스코다가마와 콜롬버스로부터 20세기 미국 중심시대까지 비스코다가마가 아프리카의 희망봉 저편으로 인도양으로 나가 동양에 이루고 콜롬버스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후 유럽고 미국이 중심이 되어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지배하던 후반까지를 말한다.

4. 태평양 중심시대(AD2000이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동서 냉전시대의 이데올로기 중심시대와 서구 식민지 통치시대가 끝나고 태평양 일대의 탈식민지 독립 국가들의 문화가 부활하고 경제가 부흥하고 서구 기독교 국가의 식민지 노예종교였던 제3세계 교회가 새로운 세계 기독교 세력의 중심으로 등장하는 태평양 중심의 21세기 새로운 역사는 태평양 시대로 접어든다.

강의 프리젠테이션

II. 기독교 선교 패러다임 변동의 역사적 추세 :

1세기 이후 21세기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선교의 패러다임은 다음 여섯단계로 변동되어 왔다.

1. 사도와 속사도 시대 선교의 패러다임:The Paradigm of Apoistolic Mission(AD30-324)
a. 선교가 곧 순교로 이어지던 박해 속해에서의 선교
b. 약하고 억압받는 피압박 민족들로부터 강하고 부강한 나라, 세계를 지배하는 초강대 국 가를 향한 선교.
c. 민족과 민족, 문화와 문화를 누비고 다니는 타민족 문화권을 향한 순회 선교.
d. 선교의 중심: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종말론적 선교.

2. 황제의 선교시대의 패러다임 :
a. 콘스탄티 이후 절대 군주 황제의 권위에 의하여 강제된 선교
b. 황제의 무력에 의한 정복자적 선교
c. 이방 종교사상과 타협하는 혼합주의적 선교
d. 선교의 중심 : 연속적 신학적 논쟁

3. 교황시대의 중세 카톨릭 선교의 패러다임 :(AD550-1600)
a. 교황의 통치 권력을 세계로 팽창시킨 강압적 선교
b. 교황과 황제가 합세하고 경쟁하던 십자군에 의한 이방 세계 정복의 선교
c. 교황이 계속 권력을 장악하던 신성 로마제국의 권력주의 선교
d. 선교의 중심: 국가 권력과 종교와 황금문명이 혼합된 선교(특징:Glory:
Gold:God were mixed together)

4. 종교 개혁시대의 선교 패러다임: (1600-1750)
a. 성경이 모든 민족의 방언으로 읽히게 하는 선교
b. 교회를 라틴 문화권 종교에서 모든 민족 문화 속의 교회로 해방시키는 선교
c.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복음 중심의 선교
d. 선교의 중심 : 성경 권위의 회복

5. 식민주의 시대의 선교 패러다임 :(1750-1960)
a. 서구 기독교 국가의 아시아, 아프리카 침략과 식민정책 하의 식민지에서의 선교
b. 서구화가 곧 선교로 인식되던 선교
c. 지배와 착취와 선교가 혼재하던 시대
d. 식민지 지배 민족의 노예교회 같은 지배자의 종속 교회 시대
e. 선교의 중심:교회가 서구화의 문명 이식 중심 세력이 되다.
(특색 : Colony:Commerce: Christianity were mixecd together)

6. 21세기 비 기독교 국가의 선교의 새 세력이 주도하는 시대의 패러다임 :(AD2000~)

a. 비서구세계 기독교 인구가 서구세계 기독교 인구보다 3배나 많아지면서 기독교가 서구 종교가 아닌 세계 종교로서의 기독교로 변한 시대의 선교.

b. 1995년부터 비서구세계 선교사의 수가 서구 선교사의 수를 능가하기 시작하면서 서구 의 선교가 비 서구 선교 세력 주도 선교의 시대로 변화하기 시작한 선교.

c. 그러나 비서구 세계 선교지식과 정보 능력은 아직도 서구 선교세력의 3분의 1에 그치 고 있다.

이러한 엄청난 선교정보 접속 능력의 갭은 선교저녈, 선교도서, 선교인터넷, 그리고 선교 정보 연구능력과 선교 전략 전문가, 선교학 연구기관, 선교학자등 선교 고급 지식 인력의 부족 현상을 의미한다.
d. 21세기 비서구 선교 지도자들의 의식이 아직 20세기 서구 선교의 연장 선상의 사고에 머물고 비 기독교 국가로부터 기독교 국가와 모든 종교의 세계로 나아가는 선교의 시대 로서의 선교 환경이 변화된 새 시대 역사에 둔감한다.
e. 선교의 중심: 모든 민족으로부터 모든 민족에게로의 선교.

제2장 :LECTURE TWO

III. 한국교회 선교 패러다임 변천사와 미래 전망:

중국을 통해 한국에 전래된 기독교:
* 중국은 AD635년 네스토리안 기독교 선교사 알로펜이 당나라 수도 장안에 도착함으로 기독교가 우리나라보다 1250년 먼저 전파되었다.
* 1807년 영국으로부터 로버트 모리슨 선교사가 중국 마카오에 파송됨으로 프로테스탄트 선교가 시작되었다.
* 중국에 왔던 선교사들이 한국 선교의 선구자가 되었다.

중국을 통해 한국에 최초로 복음을 전한 존 로스 선교사
* 1842년 영국의 스코틀랜드 북쪽 크로마티이번네스의 니그라는 작은 마을에서 휴 로스의 8남매 자녀 중 맏아들로 탄생했다.
* 1860년대 말 에딘버러 장로교 신학교를 졸업하고 1872년 30세에 선교사로 중국에 도착 했다.

존 로스 선교사의 한인 선교 사역 이야기 :
* 영국에서 중국 상해까지의 여행 길 : 캐나다 동부 - 서부 벵쿠버 일본 요코하마를 거쳐 중국 상해에 도착했다.
* 상해에서 산동성 지부에 도착했다.
* 만주 지역 영구의 우장으로 이동했다.
* 3년 동안 사서삼경을 공부했다.
* 1875년 중국어 입문 교과서를 저술했다.
* 1874년 봉황성 고려문에서 한국 전도를 시작했다.
* 1876년 한국어 입문 교과서를 출판했다.
* 1882-1884년 어간에 최초의 한국인 세계롸 고구려 수도 집안에 한인 교회가 설립되었 다.

1. 한인 디아스포라 선교시대 :
* 1874년 존 로스와 이응찬이 조선어 성경 번역에 동역하면서 선교에 동참했다.
* 1889년 대원군시대와 1894년 청일전쟁, 1904년 노일전쟁, 1910년 망국 시대에서 1912 년 장로교 총회 조직까지 38년간은 흩어진 민족을 위한 디아스포라선교시대였다.
* 한인 디아스포라시대는 흩어진 평신도들의 자생적 자비량 선교사 주축을 이루었다.

2,중국 산동성 선교를 통한 타문화권 선교의 시대(1912-1945):
* 1910년 제1회 에딘버러 세계선교대회에 대한제국 외교부 대신 유치호가 한국 교회 대표 로 참석했다.
* 1912년 총회 조직 이후 제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의 한국장로교회의 타문화권 선교는 중 국 산동성 선교에 집중된 단일국가 집중 선교시대였다.
* 1912년 총회가 외지전도부라는 이름으로 선교회를 조직했다.
* 1913년 총회 첫 선교사 박태로, 사병순, 김영훈, 세 목사를 중국 산동성 내양현에 파송 했다.
* 1917년 방효원, 홍승한, 박상순 세 선교사를 중국 산동성에 추가 파송했다.
* 1924년까지 만주 전역에 170여 곳에 교회가 설립되었다.
* 1920년 만주 지역에(1) 남만노회와 (2) 간도노회를 1922년에는 러시아 시베리아 (3) 시 베리아노회를 조직하였다.
* 1928년 제2회 예루살렘 세계선교대회에 대표를 파송했다.
- 장로교 대표 정인과 목사.
- 감리교 대표 양주삼 목사.
- YMCA 대표 신흥오 박사.
- 교육계 대표 김활란 박사.
* 1938년 제3회 마드라스세계선교대회에는 일제의 탄압으로 한국대표 파송이 좌절되었다.
* 1945년 일본제국이 패망했다.

3. 태국에서의 에큐메니칼 시범 선교 : (1955-1970)

1948년 암스테르담에서 WCC 창립과 함께 서구 선교 철수 정책이 전개되면서 1954년 동아시아교회협의회가 조직되고 태국이 에큐메니칼 선교 시범지역으로 선정되어 서구 선교사들을 철수시키고 제3세계 선교사 파송정책이 채택되면서 한국과 필리핀 등의 선교사가 태국으로 파송되기 시작했다.
한국 장로교 총회는 1955년 2월 최찬영, 김성권 두 목사를 태국 선교사로 임명하였으나 김성권 목사가 정부의 해외여행 부적격자라는 지적 때문에 김순일 목사로 교체되어 1956년 최찬영, 김순일 두 선교사 가정이 태국에 부임한 이후 의료 선교사 한 가정이 더 파송된 외에는 1970년까지 더 이상의 에큐메니칼 태국 선교사의 파송은 없었다.
1971년부터 태국 선교는 KIM과 그 밖의 한국 교회의 새로운 복음주의 선교운동 세력이 담당하기 시작한다.

4. 제도권 교회 밖에서의 선교운동시대 (1960- )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에 들어서 파라처지(para-church)운동으로 불리는 제도적 교회(institutional church) 밖의 선교운동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 시대의 학생선교단체들로는 IVF, 예수전도단, 조이클럽, 네비게이터, UBF CCC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학생선교단체 출신들이 1970년대 이후 20세기 말까지 한국 교회 선교운동을 주도하는 지도력으로 성장한다.

5. 한국신학교교육에서 선교학 도입의 시초
* 1961년 미국에서 선교학을 전공하고 귀국한 조동진이 총회신학교에서 선교학 과정을 강 의하기 시작한 것이 한국 신학교육에 선교학을 도입한 최초의 시도였다.
* 1963년 조동진은 국제선교신학원(ISM)을 설립하여 아시아 최초의 선교사 양성기관이 되 었다. 이 선교신학원은 1973년 이후 동서 선교연구개발원으로 발전하였다.
* 이화대학교 총장 김활란이 1961년 이화대학교 학생선교를 조직하여 전재옥 등 3명의 이 화대학교 출신 여 선교사를 파키스탄에 파송하였다.
* 1963년 조동진은 한국 교회 최초의 비 교파 신앙선교단체인 국제선교협력기구(KIM)를 조직하고 1968년부터 홍콩,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타일랜드에 선교사를 파송함으로써 교파 선교사 시대에서 초 교파 신앙 선교운동시대로 접어든다.

6. 범아시아적 세계선교 협력의 시대 (1973~ )
* 1965년 한국 기독교 80주년 기념 전국복음화운동이 전개되었다.
* 1966년 미국 휫튼대학에서의 <선교에 관한 횟튼 선언>과 독일 베를린에서의 <세계전 도에 관한 베를린 선언>은 세계 보음주의 세력의 선교에 관한 대각성의 계기가 되었다.
* 한국에서는 <세계 전도를 위한 베를린대회>에 열명의 대표가 참석했다. 한경직, 김활 란, 조동진, 이상근, 오병세, 최찬영, 김준곤, 조종남 외 2명.
* 베를린대회에 참석한 대표들은 세계선교를 위한 아시아 선교지도자들간의 협력의 필요 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 1968년 베를린대회의 주강사 중 한 사람이었던 한경직 목사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 전 도대회의 의장이 되었다. 한경직목사는 이 대회 이후 조동진에게 <범아시아 선교지도자 회의>를 준비하도록 위임했다.
* 1969년 조동진은 한국 전도회의 기획위원장이 되었다.

a. 서울 ‘73 범아시아 선교지도자회의 소집
* 1971년 조동진은 미국 그린레이크(Green Lake)에서 개최된 미국 EFMA/IFMA 선교지 도자회의에 참석하여 <범아시아 선교지도자회의> 소집 계획을 발표한다.
* 1972년 조동진은 홍콩의 Philip Teng. Timothy Dzao. 인도의 Samuel Kamaleson. Theodore Williams, 싱가폴의 Chandu Ray. G.D. James. 인도네시아의
Petros Octavianus, 일본의 Hatory Akira, 파키스탄의 Bashir Jiwan 감독 등을 방문하 여 범아시아 선교지도자회의 (All-Asia Mission Consultation)를 서울에서 소집하기로 합의하였다.
* 1973년 조동진은 <빌리그래함 서울전도대회>에 이어서 <범아시아 선교지도자회의>를 아카데미하우스에서 개최하는 주역을 담당했다.

b, 서울 ‘73으로 불린 이 회의에는 한국의 주요 교단 선교지도자들이 모두 참가했다.
(1) 서울 ‘73의장 : 한경직 목사.
(2) 장로교(통합) 선교위원장 강신명 목사.
(3) 장로교(합동) 선교부장 한병기 목사.
(4) 감리교회 선교국장 최종철 목사.
(5) 태국주제 김순일 선교사.

* 아시아 12개국의 선교단체 대표가 참석했다.
홍콩, 인도, 인도네사아, 일본, 캄보디아, 한국, 말레시아아, 파키스탄, 필리핀, 자유중국, 싱가폴, 타일랜드.
* 미국에서는 WEF 의 총무 Woldron Scott 미국의 두 선교단체협의회인 EFMA 총무
Clyde Taylor, IFMA, 총무 Edwin Jack Frizen, Jr, 등 서구 선교단체협의회의 공식대 표들이 참석하였다.
* 1974년 CCC의 엑스폴로 ‘74 대회에서 10,000명의 대학생이 선교 헌신을 서약하였다.
* 1974년 로잔에서의 <세계복음화대회>에서 조동진은 <선교구조의 갱신: Innovation of Mission Structure>을 제안하고 AD 2000년까지 10,000명의 아시아 선교사를 훈련하여 파송할 계획을 발표하였다. 세계는 그 누루도 이러한 엄청난 발표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 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AD2000년 아시아 국가들이 파송한 선교사의 수는 10만명을 초 과하였고 한국 선교사만도 12,000명을 넘어섰다.

c. 아시아선교협의회
창립
1975년 아시아 선교협의회 창립총회가 서울에서 개최되고 <기독교 선교에 관한 서울선언>에 아시아와 서구의 선교학자와 지도자 50여명이 함께 서명하여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비서구 세계 지도자들의 새로운 선교 세력으로서의 연합된 소리가 한국의 서울에서 발표되었다.
이리하여 1970년대에 이르러서는 한국의 선교운동이 범아시아적 협력을 통한 세계 선교 세력의 공동체의 중심 세력으로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IV. 한국교회 선교사 파송운동의 폭발적 성장의 시대: (1984-2000)

한국 기독교 100주년을 맞는 1984년 한국 교회 세계선교 운동은 불길처럼 일어나기 시작했다. 1986년에는 미국 한인교회들의 후원으로 아시아선교협의회 제4회 총회가 미국 파사데나의 윌리암케리 대학교에서 개최되고, 1988년에는 미국 세계선교 운동의 메카로 불리우는 휫튼대학에서 제1회 한인세계대회를 개최하면서 한국 교회 선교운동 세력은 세계 속으로 뛰어들게 된다. 이와 함께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가 조직되고 미국에는 한인세계선교협의회(KWMC)가 조직되었다.
서구 선교단체들은 1970년대까지 한국 교회가 서구 선교단체 파트너쉽 관계를 호소하여도 관심을 나타내지 않았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OMF, SIM, WEC 등 서구 선교단체들이 앞 다투어 한국 선교사 영입을 시작하고 파트너쉽 관계를 형성하면서 한국 선교는 그 인력과 재정력까지 서구 선교단체에 누출되기 사작하면서 서구 선교단체와의 새로운 관계 정립을 위한 조화정합의 노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한편 제도권 밖에서 성장하던 선교운동은 제도권 교회의 선교에 대한 각성을 일으키기 시작하고 교단 선교부의 선교사 파송 수가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1973년 첫 <범아시아선교지도자회의>를 개최하였을 당시 한국 선교자의 수는 12가정 24명에 불과했으며 파송 대상지역은 9개국에 불과하였다. KRIM의 통계에 의하면 1990년에는 1,645명으로 6,800% 증가로 나타났다. 마침내 90개국에 파송된 한국 선교사들은 1992년 <세계선교 한인선교사협의회>를 조직함으로써 단일국가의 선교사들이 세계적 협의회를 구성하는 세계 최초의 국가가 된다. 선교사 수의 증가는 기하급수적으로 급성장하여 2002년에는 10,422명을 기록한다. 그리고 선교 대상지역은 164개국으로 확장되었다.

이러한 폭발적 선교사의 수의 팽창은 제도권 교회들이 세계 선교를 주도하기 시작한 1980년대 후반부터 일어났다. 이것은, KRIM의 한국의 10대 선교사 파송단체 중 여섯 개가 교파 선교부라는 통계로 증명된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의 선교사 500명 이상을 파송하고 있는 18개의 선교단체 중 7개만이 교파선교부로 조사된 미국 EMIS의 통계와 큰 대조를 이룬다.
이러한 한국 선교세력의 폭발적 증가는 1995년 기독교21세기운동 국제위원회가 GCOWE '95 세계대회를 한국에서 개최하게 되었다. IWMA 는 <2000년 세계선교대회>를 개최하면서 글로벌 파트너쉽을 위한 국제회의 (International Consultation on Global Partnership>를 동시에 개최함으로써 ‘선교한국’‘글로벌 리더쉽 시대를 열게 된다.

V, 21세기 선교의 주도세력으로서의 선교한국의 미래에 대한 전망:

1960년대 이후 미국의 선교학의 경향이 교회성장학에서의 문화인류학에로, 그리고 다시 Engel's Scale 이후 소비자 추적 중심의 시장이론를 모방한 미전도종족 전도 중심으로 연구되어 가다가 최근에 들어 David Barrett과 Todd Johnson을 중심으로 발전되기 시작한 세계 인구와 종교 인구와 기독교 인구 등 각종 데이터와 통계의 비교연구를 주로 하는 미시어 메트릭스(Missio-Metrics)가 유행하면서 선교연구가 정보와 데이터 중심 연구에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잘못하다가는 이러한 미시어 메트릭스의 유행으로 한국에서의 선교의 폭발전 증가가 숫사적 마법에 휘둘려 오도되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금년들어 KWMA가 선교사 10만명 파송 시대를 설정하고 GMS가 선교사 5천명 파송 목표를 세우는 등은 한국 선교의 미래 방향 설정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 아닌가 염려된다.
KRIM의 문상철은 그의 “21세기 글로벌 선교 리더”한국 선교의 현황과 과제“라는 논문에서 ”한국 선교가 전략적이고 전문적으로 하는데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증가할 한국 선교사들과 그들이 처한 형편을 살펴볼 때.. 여러 영역에 걸쳐 전문적으로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 선교가 글로벌 리더로서 자리매김을 하기 위해서는 ”정보기술에 근거한 선교 패러다임의 전환을 시도할 추진력‘을 가지고 21세기의 선교를 선도할 필요를 강조하고 있다.
필자는 문상철의 “정보기술에 근거한 선교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할 추진력”을 글러벌 리더쉽의 필요에 대햐여 긍정한다.
그러나 이것은 습득해야 할 기술요건일 수는 있지만 글로벌 리더쉽의 충족요건이 될 수는 없다. 문상철은 최근의 미시어 메트릭스의 인포매틱 사이언스를 지나치게 의존하는 오느릐 선교학적 추세를 지나치게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성장과 팽창 위주의 21세기 정보과학만이 선교의 글로벌 리더쉽의 표준이 될 수는 없다.
필자가 서두에서 길게 언급한 것처럼 올바른 선교는 올바른 세계관과 올바른 역사관, 그리고 올바른 성서적 시관 위에 한국 교회의 선교의 기초가 확립되도록 하는 지도력이 더 우선적인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원시 선교로서의 신약시대의 사도적 선교의 원형은 프리 크리스텐덤(pre-Christendom)의 역사 위에서 시작되었다. 콘스탄틴 이후 크리스텐덤(Christendom) 위에서 지속된 그레코 로만 시대와 그 뒤를 이은 교황 시대의 로마 카톨릭 선교, 그리고 18세기 이후의 프로테스탄트 선교는 크리스텐덤으로부터 비기독교 세계를 향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21세기 비기독교 세계로부터의 선교의 주도세력인 한국을 비롯한 제3세계 선교 세력은 서구 크리스텐덤들의 식민지로부터 해방된 탈식민지 신생 독립국가들로부터의 선교의 시대이다.
이러한 새로운 선교 패러다임의 역사적 전환기에 들어선 것을 인식하지 않고서는 21세기의 새로운 글러볼 리더로서의 정체성을 가질 수 없다.
그중에서도 한국은 서구 기독교 국가의 식민지가 아닌 비기독교 세계 속의 대표적 이방종교 국가인 일본 제국의 식민지 정권 지배 아래서 억압과 굴욕 속에서 복음을 받아들인 특수한 민족으러서 기독교를 민족의 종교로 수용하여 민족 해방의 주체세력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특수한 역사적 환경 속에서 선택받아 비기독교 세계의 선교의 선도 세력이 된 한국의 21세기 선교는 새로운 글로벌 리더로서의 특수성을 가진 각별한 역할이 주어졌고 보아야 한다.
21세기 비기독교 국가로부터의 새로운 선교 세력의 지도력은 전통적 서구 기독교 국가인 크리스텐덤으로부터의 비기독교 세계를 향한 전통적 선교의 계승 세력이 아닌 사도시대의 선교와 같은 약한 자와 눌린자와 빼앗긴 자들로부터 강하고 적대하는 반기독교 세력들을 향한 선교의 세계관 위에서의 21세기 새로운 세계선교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기초로 출발해야 한다.
코페르니쿠스 이전의 천동설과 그 이후의 지동설에 따라 그 패러다임이 전환될 밖에 없었던 것처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 발견 이후 지구에 대한 패러다임이 변한 것처럼 또한 아이작 뉴튼의 만유인력설 이후 과학의 패러다임이 전환된 것처럼 20세기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이후 과학의 혁명적 패러다임으로 전환된 것과 소련 우주인 ‘유리 가가린’의 우주 왕복과 미국 아폴로호가 달에 착륙한 이후 우주시대의 새 패러다임이 열린 것처럼 신생 탈식민지 독립국가들이 세계선교의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한 비기독교 국가로부터의 21세기 새로운 선교 세력은 우주시대의 새로운 공간 개념과 새로운 역사관과 시관을 필요로 한다.
이 같은 시관은 “현재와 과거가 단숨에 비약하며 미래의 창조 속에 용해되는 <폭발적 시간>을 의미한다. 이미 우리는 지난 20세기 후반 <교체적 시간>인 과거와 미래가 끊임없이 경쟁하는 시간을 지나 미래가 현재가 되는 <추진적 시간>을 통과했다.
지금 한국 선교운동의 가장 큰 문제는 오늘의 이러한 선교의 새 역사 창조의 <폭발적 시간>이라는 위기의 시간에 그 위기감이 없는 한국 교회 선교지도자들의 불감증의 문제이다. 우리는 미시오 메트릭스의 숫자적 마력에 매혹되어 있을 시간이 없다.
인간 발전과 인간 개발을 향한 무한 도전은 하나님 중심의 질서를 파괴한지 오래다. 진화론으로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교란시킨 인간은 마침내 생명의 질서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교회가 동성결혼을 용납하고 성 전환 수술이 보편화 되더니 결국은 생명 복제의 문턱에까지 이르고 있다.
20세기 후반부터 교회관이 변하고 있다. 풀러선교대학원장이었더 폴 피어슨(Paul Pierson)은 지난 밀레이엄 시대의 제도적 교회 교회관의 시대는 끝나고 있다고 했다. 제2차대전으로 선교사들이 철수함으로써 서구 식민지 선교가 공백을 이루었을 때 제도적 교회가 고사된 환경에서 제도권 교회 밖의 박해받는 그리스도인들의 가정교회라는 새로운 사도적 원시적 교회 시대가 재현되기 시작했다.
사도시대와 속사도 시대에는 제도화된 교회가 없었다. 다만 그리스도의제자가 된 무리들의 모임이 있었을 뿐이다. 월드 크리스챤 엔사이 클로피디아의 통계에 의하면 AD 2000년 현재 제도적 교회 밖의 그리스도인의 집단이 2억을 넘는다.
(1) 인도에는 2천4백10만명의 제도적 교회 밖의 힌두 문화권 속의 그리스도인이 있다.
(2) 아프리카의 제도적 교회 밖의 그리스도인의 수는 5천2백만 명이 넘는다.
(3) 중국의 삼자 교회 밖의 비 제도적 가정교회 그리스도인의 수는 7천명을 넘는다.
한국 선교지도자들은 21세기가 이러한 사도시대적 원시기독교 사회의 시대로 변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제도적 교회의 선교의 울타리를 넘어서서 원시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로서의 21세기 새로운 교회 랄프 윈터(Ralph D. Winter)를 비롯한 전위적 선교역사학자들은 이러한 추세에 대해 처치레스 크리스차니티 시대가 오고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새로운 터미놀로지가 올바른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너무나도 익숙해진 시대의 신앙공동체로서의 순수한 신약시대의 교회관에 생소해졌다. 새 시대는 20세기를 지배하던 개발 중심과 프로젝트 중심의 선교에서 종말론적 사도시대의 선교 원리에로의 회귀가 오고 있는 시대이다.
제도와 구조를 탈피한 역사적 원형인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공동체 곧 Believers' Fellowship으로써의 거룩한 원형적 교회를 창출하는 선교의 길을 열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시대에 새로운 선교역사 창조의 21세기 바울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한국 교회 선교의 새 역사 창조의 지도력은 바울의 선교원리로서의 회귀를 통해서만 정립될 수 있다.
(1) 바울과 같은 창조적 선교 경륜가.
(2) 바울과 같은 창조적 선교 전략가.
(3) 바울과 같은 세계 수준의 선교 이론가.
(4) 바울과 같은 지역별 선교전문가.
(5) 바울과 같은 종말론적 선교를 위한 우주적 심정과 세계적 호흡을 가진 복음의 증인으 로서의 순교 정신.

선교한국의 미래는 이러한 사도 바울적 선교 지도력을 갖출 때 비로소 밝은 소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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