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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오피니언 > 발행인칼럼 등록일 2011-01-22
작성자 관리자 (admin)
정보화 시대의 기독교
신앙세계
정보화 시대의 기독교


이 사회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정보화사회이다. 정보화사회는 사회 중심의 역할을 정보가 주축으로 이루어져간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정보화사회의 탄생은 기술적인 동향으로 두가지관점에서 생겨났다고 볼 수 있다. 컴퓨터와 통신의 발전이다. 이 두 개의 기술이 합쳐서 정보화사회를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물건을 전달할 수 있는 도로나 항만 시설이 없이 산업사회가 발전할 수 없듯이 정보화사회는 컴퓨터와 통신망의 수단이 없이는 불가능했다. 우리는 좋든 싫든 이러한 사회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정보화 사회의 변화에 대해서 말하는 것 자체가 더 이상 앞서가는 발상도 전략도 아니다. 진행형으로 붙여졌던 정보화(情報化)의 '화'를 삭제해도 무관하다고 본다. 지난 20여 년 동안 우리는 실감나는 기술속도의 변화 속에 살아왔다. 앞으로도 그런 시대가 이어질 전망이다. 근래에 관심은 무선 인터넷으로 가능하게 된 스마트폰일 것이다. 그리고 잠시 주춤한 듯 보이는 텔레비전 분야에서도 입체텔레비전이 당초 5년 정도로 기술개발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했으나 가전업체들의 치열한 경쟁 속에 3년 이상 앞당겨져 내년 하반기쯤이면 안경을 쓰지 않고도 어지럼증도 일어나지 않는 입체텔레비전이 나올 전망이다.
세계적인 기업이 된 삼성전자의 전체 직원은 17만 명이다, 이중에 국내 직원은 9만 명이다. 이중에 흔히 말하는 R&D 분야에 5만 명의 인재가 붙어서 하루 약 2조원을 사용하며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제품 하나 하나에 피 말리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200여 개국 이상에서 팔리고 있는 코카콜라는 가장 인지도 높은 상표이기도 하다. 예수는 몰라도 코카콜라는 안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코카콜라 사장이었던 캔들러는 "내 몸 속에는 코카콜라가 흐른다"고 말했다고 한다. 예수께서는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14:23-24)고 하셨다. 갑자기 피의 이야기를 하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고 살고자 하는 죽는다. 이것이 예수님의 말씀이다. 양이 이리 가운데 있을 지라도 비둘기 같이 순결하고 깨어있는 지혜만 있다면 살 수 있다.

유럽의 교회는 후기 산업사회 속에서 병들고 시들어 갔다. 물질 만능이 낳은 폐단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 갔다. 정보화 사회는 단순히 물질적 풍요만을 제공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좀 더 나아가 어떻게 즐길 것인가 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굳이 땀흘려 노력하지 않아도, 육체적 노동을 요구하지 않아도 기쁨을 느끼고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밖에 나가지 않아도 방안에서 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전자오락으로 주어진 기쁨과 땀흘려 얻어낸 기쁨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정보화 사회가 가져다 준다는 환상에 속아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하면 진정한 기쁨은, 복음은 정보화 사회가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딕 호이트는 "손으로 일하는 것을 즐겼다. 땀 흘려 무언가를 만들어 냈을 때의 기쁨과 보람만큼 가치 있는 것은 없다"고 했다. 칼 바르트는 하나님은 "행동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보화 사회가 가져다주는 이점이 있다. 한 예로 뇌성마비인 릭 호이트, 스티븐 호킹 박사는 컴퓨터가 없었다면 정상적인 의사 소통이 불가능한 사람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마치 세례가 동유럽 겨울의 추운 날씨 속에 얼음을 깨고 중환자에게 침례를 베풀지는 못하지만 물을 뿌려주는 의식으로 대치된 것을 오늘날 우리가 인정하듯이 사이버 공간을 통해서 현실적인 장벽을 깨뜨려 비록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정상적인 사회 활동을 가능하게 한 순기능이 있다.
정보화 사회는 우리에게 첨예한 양면성을 가져다 주었다. 달구지를 타고 갈 때 낭떨어지로 굴러 떨어져도 조금 다치기는 해도 죽지는 않는다. 그러나 정보화 사회는 다르다. 비행기를 타고 가면 빨리 갈 수는 있다. 그러나 사고가 나면 대형사고다. 그만큼 위험 부담이 크다. 마찬가지로 정보화 사회가 이런 현상을 가져다 주고 있다.
컴퓨터는 기계에 불과하며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분명한 것은 컴퓨터를 할 수밖에 없는 시대에 살고있다는 것이다. 컴퓨터의 장점을 굳이 다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미 독자들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만은 생각해야 한다. 이 기계를 가지고 우리는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

인터넷과 컴퓨터는 선진국이지만 문화 후진국이라는 말은 들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정보화 사회 기술 문화는 선진국형인데 우리의 일상생활 문화는 후진국형이다. 가정의 문화를 생각해 보자. 미국이나 유럽 등의 선진국에서 가족단위의 놀이문화가 발전된 것을 싶게 볼 수 있다. 아빠가 자녀들과 함께 공원이나 놀이터에서 뛰어 노는 모습은 낮선 풍경이 아니다. 평일은 바쁘다는 핑계로 휴일은 쉰다는 핑계로 자녀들과 놀아주지 못하는 현상은 아이들을 더욱 컴퓨터라는 기계 앞으로 몰아내고 있다. 결국 컴퓨터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는 아이들의 문제이기보다는 어른들이 이러한 환경을 만들어 놓았다고 볼 수 있다.

가정의 문제, 개인적인 문제가 결국 사회 전체적인 문제를 낳는 것이다. 사람이 평생 살 것을 유치원에서 다 배운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고 21세기가 되어 지식사회, 다원주의 사회, 속도 사회가 된다해도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서구 기독교가 산업 사회 때 바로 대처하지 못한 것은 사회에 대한 적응에 실패해서가 아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는 1930년 12월 30일(화)에 아베라본 샌드필드에서 7명의 목사와 3명의 장로를 만나 신앙의 본질이 아닌 활동을 스스로 절제할 것을 선언한다. 이 내용에 보면 "교회는 바자회나 음악회 등과 같은 세상의 수단과 방법에서 손을 씻을 것을 선언한다. 그리고 우리는 회중에게 회심과 중생을 강조할 것이다. 모든 성도들은 죄 사함과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성화되어 가고 성령을 영접하여 갈라디아서 5장 22절의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도록 힘쓴다."고 했다.

우리는 오늘날 스마트폰을 잘 사용하고 교회 홈페이지가 많다고 자랑하거나 그것만 잘 하는 것으로는 안 된다. 다음 세대는 그러한 기기의 사용 방법을 가르치지 않아도 스스로 잘 할 것이다.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

@ 이영제 목사
주 : 본 내용은 2011년 1월호(통권510호) '신앙세계'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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