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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선교학자료 > 논문 등록일 2010-03-12
작성자 관리자 (admin)
이슬람 다콰(선교) 운동과 바나나 신학
-말레이시아의 부활절과 신학적 의미-
(고난과 부활절 논설)
노종해 목사 / 말레이시아 선교사


1. 말레이시아의 복합 사회와 기독교 이해


말레이시아는 다인종 다종교 다문화 다언어의 복합사회(複合社會, pluralistic society)이다. 고대로부터 중국대륙과 서구를 이어주는 동.서문명의 교류와 산업, 종교의 교차로(Crossroads) 이며, 다양한 인종과 종교, 문화의 용광로(Melting Pot)로써 말레이시아의 특징을 이룬다. 말레이 군도(Malay Archipelago)에는 인도와 아랍 상인들이 드나들며 힌두교, 불교와 이슬람교가 전파되었고, 이들은 토착민들과 교류하고 함께 살기도 하면서 자신의 종교와 문화를 전파시켰다. 이슬람교는 10세기 초에 무역상인들과 선교사들이 말레이 군도에 전파하여 이 지역의 유력한 종교가가 되었다.
14세기에 말라카의 파라메스와라(Parameswara)왕은 슈마트라의 사무드라 파세이(Samudra Pasai)왕가와 동맹을 맺고 파세이(Pasai) 공주와 결혼하고 무슬림으로 개종하였다. 이름도 메갓 이스칸다 샤(Megat Iskandar Shar, 1400-1414)란 무슬림 명으로 개칭하였고 슐탄(Sultan)으로 말라카 왕국의 첫 이슬람 군주가 되었다. 이로써 말라카는 말레이시아 뿐 아니라 동남아 이슬람 학문와 선교의 중심이 되었다. 마을마다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와 종교학교(pondok School)를 세웠고, 이슬람 신비주의인 슈피즘(Sufisim)이 중심이되어 이슬람을 정착시키고 확신시켜 이슬람국(Islamic State)을 수립케 하였다.
말레이시아의 기독교는 서구 식민통치와 함께 들어 왔다. 1511년 폴투칼이 말라카 왕국을 몰락시켰고, 무역과 함께 캐토릭을 전파하였으며, 1641년 화란(Dutch)이 폴투칼을 물리치고 무역을 주도하며 기독교(개신교)를 전파하였다. 화란에 이어 1786년부터 영국이 통치하였다. 영국은 1874년 방코조약(Pangkor Treaty)을 맺어 말레이인(Malays)의 종교와 전통, 관습을 보호하고 보전케 하였다. 방코조약으로 말레이 왕은 행정권은 없으나 말레이인과 이슬람의 수장으로 말레이 관습과 이슬람을 보호할 권한을 가지게 되어 영국은 말레이인이 지역에서 특별한 지위를 갖게 하였으며 오늘날 말레이시아 연방의 기초를 놓았다.
영국은 중국인과 인도인들을 이주시켜 주석광산과 고무농장 등 산업을 일으키고 도시를 형성케 하였으나 말레이인(Malays)들은 농촌에서 전통적인 생활에 머믈러 있었다. 이러한 영국의 이주정책은 기독교가 서구 식민 세력의 종교이며, 중국계(Chinese)와 인도계(Indian)의 이주민 종교(Immigrant Religion)로 여기게 되었다. 말레이시아 신학대학의 알버트 왈터 교수는 “말레이는 식민통치에 저항한 이슬람과 동일시되고, 기독교는 식민 지배와 산업확장 세력과 동일시되어 오늘날 무슬림과 기독교 관계에 중요한 문제를 야기 시켰다”고 하였다.
이러한 영국의 식민정책은 1957년 말레이시아가 독립하고, 1965년 말레이시아를 건국하며 “말레이인”(Malays)과 “이주해 온 인종”(Immigrant Race)을 구별하여 말레이 인종적 우월성을 갖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이는 오늘날 말레이시아 정부의 부미뿌트라(Bumiputra, 본토인) 정책이며 말레이시아 국민도 크게 두 부류로 부미뿌트라(Bumiputra)와 비 부미뿌트라(Non-Bumiputra)로 나누어 원주민들과 이주민을 구분하고 있다. 현재 말레이시아 인구 2천7백만 명 중 65.1%가 부미뿌트라 이다. 말레이시아 시민을 더 세분해 보면 부미뿌트라 집단은 서 말레이시아의 오랑아슬리(Orang asli, 원주민)와 말레이계(Malays), 동 말레이시아 사바(Sabah)와 사라왁(Sarawak)의 토착민으로 구분된다.
비 부미뿌트라는 주로 중국인(26%)과 인도인(7.7%)이다. 말레이시아의 종교는 인종과 비례되어 이슬람 60.4%, 불교 19.2%, 힌두교 7%, 기독교 8%, 유교/도교/중국인종교 2.6%, 원시신앙이다. 말레이시아의 기독교는 총 인구의 8%이나 이는 주로 중국계와 인도계이며, 동 말레이시아의 토착 원주민들이 기독교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들 더 세분하면 동(東) 말레이시아의 기독교는 40%에 이르며, 서(西) 말레이시아는 2.5%로 말레이 무슬림이 강하다. 말레이시아 인구의 76%가 서 말레이시아에 살고 있으므로 말레이시아의 중심지의 기독교는 소수이다.
말레이시아에서 기독교는 식민통치 세력의 서구종교, 이주민의 종교로 여기며, 다수 인종인 말레이인(Malays)들은 무슬림이다. 그러므로 테러와의 전쟁도 서구식민 세력과의 전쟁으로 보고 기독교와 이슬람간의 전쟁으로 여겨 종교전쟁, 즉 지하드(Jihad, 성전)로 여기고 있다. 말레이시아 무슬림들은 “이슬람 근본주의 재 발흥”(Islamic Fundamentalist Revival)운동으로 “다콰운동“(Dakwah Movement)을 일으키고 있다. ”다콰“(Dakwah)는 ”선교"(Mission)란 뜻으로 이슬람 교리와 신앙생활을 삶 속에서 신실하게 지키며, 이슬람을 증진시키는 자발적인 운동이다. 다콰운동은 말레이시아에 이슬람의 신앙 수준을 높이고 심화시키는데 공헌하고 있으며, 이슬람을 증진시키려 다방면으로 선교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는 정부의 정책과 통계일 뿐 실제로 말레이시아 원주민인 동 말레이시아 사바(Sabah), 사라왁(Sarawak) 주민들과 서 말레이시아의 최초 원주민인 오랑 아슬리(Orang Asli)는 무슬림이 아니다. 말레이족(Malays)은 무슬림으로 다수인종 일 뿐이지 저들도 이주민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말레이시아에서 기독교를 서구 식민 제국주의의 종교, 이주민들의 종교로만 여길 수 없다. 이러한 말레이시아에서 기독교는 부활절을 어떻게 지키고 있으며, 신학적 의미가 무엇이며, 말레이시아 기독교의 과제가 무엇인지를 찾아보며 한국 기독교 선교의 방향을 제시하려 한다.


2. 말레이시아 기독교의 부활절

말레이시아의 부활절은 사순절(四旬節, Lent)이 시작되는 성회 수요일(Ash Wednesday)부터 시작된다. 사순절은 예수님의 40일 광야생활의 금식에서 유래하며, 성회 수요일을 지난 첫 주일부터 부활절까지 6주간을 지킨다. 성회 수요일은 재를 뿌리며 죄악을 슬퍼하고 참회하는 데서 유래되어 교회는 죄의 심각성과 하나님의 심판대에 설 것을 가르치며 참회를 권고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를 간구 하도록 한다. 말레이시아 교회 중에는 이날 교인 개개인들이 코코넛(야자나무) 잎 한 가닥으로 작은 십자가를 만들어 집안에 걸어 두도록 한다.
사순절 절기가 시작되면 대부분의 교회는 40일 금식에 들어간다. 40일 금식은 말레이 무슬림들이 라마단(Ramadan) 금식절기로 지키고 있어 생소한 것이 아니다. 금식은 한국교인들이 흔히 생각하듯 40일 단식이 아니다. 말레이시아 기독교인들의 금식은 3가지 방법으로 지키고 있다. 첫째는 하루에 한끼를 금식하는 것이다. 점심이나 저녁을 금식한다. 둘째는 고기를 금하는 단순하고 간단한 채식으로 금식하는 것이다. 어떤이들은 계란까지도 금하기도 한다. 이로 보면 부활절 계란이 얼마나 맛있겠는가?. 셋째는 음료수만 마시는 금식(Liquid Fast)이다. 이 금식은 쥬스와 커피 같은 음료는 피하고, 물과 우유, 코코아 정도를 마시며 음식은 단식하는 금식이다. 나는 선교사로 말레이시아에 도착하여 현지 목회자 뿐 아니라 교인들까지도 40일 금식하는 것을 보았다. 말레이시아의 대부분 기독교인들은 어린 학생들까지도 금식을 실천하는데 세가지 중 한가지 방법으로 금식하도록 교회에서 가르치고 신앙과 영성생활을 실제로 지도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여성교인들은 사순절 기간 동안 매일 쌀 한 그릇을 성미로 성별하여 모아 두었다가 부활주일에 교회로 가져와 드리며 사랑의 구제미로 사용한다.
종려주일에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재현키도 한다. 개체교회에서도 실행하지만 보통 인근 교회와 함께 연합하여 재현하며, 목회자나 교인 중에서 예수님 역할을 하고, 교인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뒤따르고, “호산나 호산나, 하나님께 영광” 찬양하며 교회 주변 마을과 거리를 돌고 교회까지 행진하여 들어간다. 때로는 인근 두 교회가 이 교회에서 저 교회로 옮겨 행진하며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며 축복하기도 한다. 종려나무인 팜 나무(Palm Tree)는 말레이시아의 주요 농장을 이루고 있으며, 팜유(Palm Oil)는 말레이시아 주 생산품으로도 유명하다. 교회 입구와 실내를 팜 나무 가지로 장식하기도 한다. 종려나무 가지는 승리의 상징으로 예수님은 우리의 약함과 영육간의 질병을 고치시고 승리하심을 믿고 기뻐하며 찬양하는 것이다.
종려주일은 수난주간의 시작이다. 수난주간 한 주간은 기도회를 갖게 되는데 특이한 것은 교회에 모여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을 순회하며 기도회를 갖는 것이다. 말레이시아는 가족 중심, 가정 공동체의식이 강한 사회이다. 말레이시아인들은 절기 때마다 고향(Kampung)으로 돌아가며, 가족 중심으로 지키는 것을 볼 수 있다. 수난주간 기도회는 목회자 뿐 아니라 평신도 지도자들도 편성하여 가정을 방문하여 기도회를 인도하기도 한다. 우리는 말레이시아 기독교 신앙생활이 가족, 가정 중심임을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수난주간에 가정 기도회 뿐 아니라 마치 한국교회의 속회나 구역예배와 같이 지역 가정들이 모여서 기도회를 갖기도 한다. 말레이시아 교회는 날마다 가정 순회, 지역 순회 기도회를 사순절 기간에 특히 수난주간에 실시한다. 사라왁 지역도 마찬가지이다. 롱하우스(Longhouse) 마다 거리가 멀고 교통편이 열악하지만, 조그만 롱 보트나, 오토바이를 타고 롱하우스를 순회하며 기도회 인도하는 목회와 전도 여행을 쉼 없이 하고 있다. 이로써 이반족(Iban People) 40%를 저들은 스스로 복음화 시킨 것이다. 한국교회는 서구를 지향하여 아시아의 교회를 무시하고 소홀히 여기지 않는가를 사순절 기간에 깊이 묵상하고 그리스도 안에 한 형제로써 사랑과 은혜를 나누며 선교에 동참하는 교회가 되길 바란다.
세족목요일(Maundy Thursday)에는 교회에서 기도회로 모이며 세족식과 성찬예식을 갖는다. 이 기도회 때 성회 수요일에 야자나무 잎으로 만들어 집안에 걸어 둔 작은 십자가를 교회로 가져와 불태우기도 한다. 나무 잎 십자가는 그 동안 바짝말라 순식간에 재가되어 버린다. 우리 인생이 재처럼 사라질 무가치한 존재이며 흙으로 돌아갈 존재임을 상기시키며 십자가의 은혜를 간구해야 함을 가르쳐 준다.
성 금요일(Good Friday)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날이다. 말레이시아 교회 중에는 이 날 목회자가 십자가를 지고 시내와 마을, 교회를 돌기도 한다. 이 때 성도들은 십자가를 따라가며 찬양하고 교회로 들어가 기도회를 갖는다. 기도회는 정오에서부터 오후 3시까지 갖는데 십자가상의 7언을 묵상하며 참회하고 믿음을 굳게 하도록 독려한다. 밤 집회는 없으나 지역에 따라 밤 8시에 기도회로 모이는 교회들도 있다. 말레이시아 정글밀림지대, 농촌 교회들은 교회에 모이기 어렵기 때문에 목회자들이 가정을 순회하며 기도회를 인도한다.(특히 동 말레이시아 사바, 사라왁 원주민 마을 교회들). 동 말레이시아에서 성 금요일은 공휴일로 지키고 있다.
부활주일(Easter Sunday)은 새벽 예배로 시작이 된다. 한국교회의 새벽이 아니라 이들은 “해 돋는 예배”(Sunrise Service)라 한다.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 등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간 때가 성경에는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매”(막16:2)라 하였다. “해 돋을 때”를 영어성경에는 “at the rising of the sun"(King James역)이라 했다. 필자는 말레이시아 선교사로 도착하여 콸라룸푸르에서 부활절 새벽 연합예배에 매해 참가하였다. 그런데 한국교회와 다른 점은 훤히 밝아오는 시간에(오전 6:45) 시작하여 예배 중 해가 떠올라 환하기도 하고 덥기도 하였다. 나는 ”이 사람들이 한국인처럼 부지런하지 못해 일찍 일어나지 못하는 구나?“ 오해하였다. 그러나 성경을 찾아보고 서야 말레이시아 교회들이 성경말씀을 근거로 부활절 연합 예배를 드리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말레이시아 교회의 부활절 연합 예배는 한국교회와 같이 교파를 초월하여 모이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교파 교회가 몇이 연합으로 모이기 때문에 큰 도시가 아니면 모이지 않고 개 교회에서 ”썬라이스 예배“(Sunrise Service)를 드린다.
부활절 장식은 코코넛 나무 잎, 바나나 줄기와 잎 등으로 아치(Arch)를 만들고 장식하며, 강단에는 “예수 부활하셨다”(He is Risen), “축복의 부활주일”(Happy Easter Sunday)등이라 써 붙친다. 말레이시아에서는 기념일과 축제 때 코코넛 나무 가지, 바나나 잎 등을 많이 사용한다. 말레이시아 귀빈 환영 때도 야자나무 가지 모양을 들고 환영한다. 말레이시아에는 큰 도시의 주요교파 대형교회도 있지만, 눈에 띄지 않는 가정교회, 상가건물 교회들도 많이 있으며, 정글마을교회나 사바, 사라왁 원주민 롱하우스 교회들은 실내에 한 곳에서 예배 드린다. 이들 교회들은 교회 안에 부활절을 알리는 장식을 하며, 교인 가정 집집마다 장식하고 있다. 롱하우스 방문 위에 “예수부활“을 알리는 글이나 성화를 장식해 놓는다.
부활주일 예배는 찬양, 드라마 등의 특별 순서를 갖기도 하며, 과일케익(Fruit Cake)을 특별 케익으로 나누기도 한다. 사라왁 이반족들은 쌀과 설탕으로 만든 전통적인 떡인 “빵간안”(panganan)을 만들어 기쁨을 나눈다. 부활절 삶은 계란을 나누는데 교회학교에서는 교회 정원 곳곳에 달걀을 숨겨두어 예배 후 찾기 게임을 하기도 한다.
사바, 사라왁 지역에서는 부활절 디너(Dinner)를 교회 연합으로 시청 홀, 마을회관과 같은 곳에서 지역 주민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열기도 한다. 또한 롱하우스 마다 주민 초청하여 부활절 잔치를 열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기쁨을 나눈다.
부활절 특별 전도집회를 개최키도 하는데 대 도시 대형교회에서는 스타디움 운동장(Stadium)을 빌려 찬양과 무용, 드라마, 치유기도, 멧세지 등의 순서를 갖기도 한다. 대부분의 교회들은 교인 가정을 교회로 초청하여 잔치(Dinner)를 여는데 이웃과 함께 참여케 하여 전도의 기회로 삼고 있다. 말레이시아 사회는 축제가 많이 있으며, 때마다 잔치 열기를 즐기는 풍습을 가지고 있다. 무슬림들도 이슬람 축제일에는 집을 개방하고(Open House) 잔치하는 풍습이 일반화되어 있다. 기독교인들도 부활절에는 교인들이 가정에서 개별적으로 이웃을 초청하여 음식을 나누지만, 교회적으로 마을과 지역민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열고 특별 순서를 가져 전도의 기회로 삼고 있다. 말레이시아 교회는 한국교회와 같이 교회마다 성가대는 없어도 청년들로 조직된 찬양팀이 있어 이러한 만찬(디너) 때 찬양 인도하며, 특별 강사를 초청하여 전도집회하기도 한다. 마치 디너 파티 하듯 이들은 함께 식사하며 멧세지도 듣는 집회를 잘 연다. 우리가 보기에는 예배 같지도 않고 경건해 보이지 않으며, 먹고 사귀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한국교회의 습성에서 보는 것일 뿐 이들은 이러한 분위기에서 친근감을 가지고 마음을 열게 되며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계기를 이루게 된다.
말레이시아 부활절 풍습에서 우리는 첫째 가정, 가족 중심으로 지켜짐을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기도회와 특별 활동순서도 가정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말레이시아의 관습과 풍습이 조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장식 자료도 서구식이 아니라 자신의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코코넛, 바나나, 사탕수수, 팜유 나무 등으로 장식하며, 음식도 자신의 종족 음식을 차린다는 점이다. 간단하고 단순한 음식으로 잔치하며 케익도 전통적인 과자와 떡을 사용한다. 셋째는 성경말씀을 중심으로 예수의 생애를 재현하는 부활절을 지키고 있는 점을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넷째는 마을 주민과 이웃을 초청하여 함께 나누는 절기로 지킨다는 점이다. 이는 다인종(多人種), 다문화(多文化), 다종교(多宗敎)의 말레이시아 사회에서 서로 나누고 축하하고 사귀는 지역 문화가 교회 절기에도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3. 말레이시아 부활절의 신학적 의미

말레이시아는 이슬람을 공식 종교로 하는 이슬람국가(Islamic State)이다. 이슬람은 기독교 교리와 생활에서 유사한 점이 많은 것 같지만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부인하고 있다. 예수를 메시야로 선지자로 여기며 복음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기는 등 기독교에 대해서 친밀감을 가지고 있는 줄 알면 이는 중요한 오해이다. 무슬림은 예수님이 실제로 십자가에 못 박히지도 않았고, 십자가에서 죽지도 않았으며, 전능하시고 유일한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키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힐 필요가 없다고 믿고 있다. 하나님이 하시면 될 것을 왜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느냐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십자가도 부활도 없는 것이다. 무슬림은 예수가 하나님의 특별한 능력을 가진 예언자라 할지라도 유대인을 위한 예언자일 뿐이라는 것이다. 무하마드만이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유일한 마지막 결정적인 예언자로 하나님 계시의 완성이라 믿고 있다. 이러한 말레이시아에서 부활절을 지키는 중요한 의미는 무엇일까?
첫째로 예수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는 무익한 것이다. 이 점에서 이슬람권 말레이시아에서 부활절을 지키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기독교의 시작은 성탄절이 아니라 부활절이다. 기독교는 성탄절 보다 부활절에서 특성이 드러난다. 성탄절은 세계문화현상이 되어 예수 없이 선물 주고 인정을 나누는 절기로 세속화되어 있다. 그러나 부활절은 기독교만의 독특한 절기이다.

둘째는 십자가와 부활에서 친밀한 사랑의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다. 부활하신 주님은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15:14)하셨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친밀한 친구관계 임을 성경은 가르켜 주고 있으며(대하20:7, 출33:11). 예수님도 ”세리와 죄인의 친구”(마11:19, 눅7:34)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22:37-40)하셨고, “너희는 나의 친구”라 하셨다.(요15:15). 바뚜말레이 박사는 “말레이시안 신학“을 ”무히바“(Muhibah, Friendship), 즉 ”우정“이라 하였고, 이를 ”이웃신학“(Neighbourology)이라 하였다. 말레이시아 신학대학의 알버트 월터 교수(Rev Dr, Albert Walter)도 말레이시아에서 “친구로써의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 보다 더 현실적이라고 했다.

세째로 말레이시아에서 부활절의 의미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타인을 위해 사는 삶”임을 보여 주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고난받고, 희생으로 자신을 주는 진실한 친구인 것이다. 말레이시아의 잠부나탄(Rev K. Jambunathan)목사는 이런 신앙을 "바나나"(Banana)로 묘사하였고, 알버트 월터 교수도 말레이시안 신학을 “바나나 신학“이라 하였다. 바나나는 예수의 희생적인, 자기를 내어 주는 삶의 상징이라 하면서, ”바나나는 아시아에서 자기를 내어 주는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의 삶을 상징하는 것“이라 했다. 바나나는 말레이시아 전역에 흔히 자라는 식물로 자신을 주는 상징이다. 바나나 나무 대부분은 먹을 수 있고 버리는 것 없이 사용된다. 바나나 잎은 음식을 담는 식기로 쓰이며, 비 올 때는 우산이 되고, 바나나 꽃은 나물을 해 먹고, 바나나 나무와 잎은 의식과 잔치 때 장식품으로 쓰인다. 바나나 열매는 세계인이 즐기는 음식 자료가 된다. 바나나는 종교 문화 축제 때 항상 사용된다.
마지막으로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온 인류의 구주이시다. 말레이시아 기독교는 이미 살펴 본대로 교회절기와 신앙생활에서 인종과 문화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으며 전통 관습과 연계되어 절기를 지키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이 점에서 말레이시아 기독교는 단순한 서구 기독교를 모방하고 추종하는 교회라 할 수 없다. 부활하신 주님은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하셨다. 기독교는 어떤 특정 지역의 종교나 문화 현상이 아니다. 결코 기독교는 서양식민 통치자들의 종교가 아니며 서양종교, 서구문화 현상이어서도 안되다. 이 점에서 오늘날 말레이시아 기독교는 “말레이시아에 있는 기독교인”(Christians in Malaysia)이 아닌 “말레이시아의 기독교인”(Christians of Malaysia)을 고민하며 추구하고 있으며,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삶을 사는 것으로 “말레이시안 신학”(Malaysian Theology)의 주제를 이루고 있다. 바뚜말레이(Rev Dr, S. Batumalia), 화용(Rev Dr, Hwa Yong, 華勇), 헐만 싸쓰트리(Rev Dr, H. Sastri), 알버트 월터(rev Dr, Albert Walter)등의 신학자들과 교계지도자들이 모색하고 있다. 한국 기독교는 말레이시아 그리스도인 형제들과 함께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키고, 그리스도의 삶을 살며, 선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는 이것이니라“(요15:12)


* 참고도서*

Batumalai, S. : A Malaysia Theology of Muhibbah, Petaling Jaya, Malaysia, 1990.
Hwa Yung : Mangoes or Bananas?, The Quest for an Authentic Asian Christian Theology, Oxford, regnum,1997.
Albert S. Walters : We Believe in One God?, Reflection on the Trinity in the Malaysia Context, Delhi, ISPCK, 2002.
Robert Day McAmis : Malay Muslims, The History and Challenge of Resurgent Islam in Southeast Asia, M I : Wm B. Eerdmans Publishing, 2002.
盧宗海 : 東南亞 이슬람과 韓國 基督敎 宣敎, 서울 : 성서연구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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