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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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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현장 > 서아시아 |
등록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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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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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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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adm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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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에서 부탄으로 상황으로 몰아져 가는 것을 보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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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저이거온과 부탄 푼솔랑을 오고가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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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선교를 위한 나의 몫이 다 끝나면 부탄 선교를 위해 나아가겠다고 막연히 기도만 하던 일이 생각지도 못했던 여러 가지 일들이 얽히며 네팔 선교를 내려놓고 부탄 선교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져 가는 것을 보면서
“ 주님! 이것이 정말 주님의 부르심 이라는 확신이 설 수 있도록 제게 증거를 보여주세요!!!”
죽음의 사선을 넘어 부탄 선교를 향한 주님의 소명을 확인하며 영혼의 깊은 절규 가운데 네 번째 선교 사역 Term을 출발하게 되었다. 네팔에 다시 도착해서도 이런 무거운 마음들을 날마다 주님 앞에 토설하며 기도 하던 중에 저희 네팔 Salvation Worship Team의 리더인 펑커즈(Pangkaj) 형제가 부탄 국경 도시인 인도의 ‘저이거온(Jaigaon)’이라는 도시에서 자라난 사실이 다시 문득 생각나게 된 것과 자기가 다니던 모교회(KurunaChurch)의 담임 목사(JohnBhutia)가 부탄에서 직접 교회를 개척하던 초대 부탄교회 지도자가운데 한 분이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래서 너무 신기해서 펑커즈 형제에게 그 목사님을 좀 만나 뵐 수 있도록 연락을 취하라고 부탁했다. 며칠 뒤 약속된 날짜가 정해지고 처음으로 부탄 국경 도시를 방문할 계획을 세우고 펑커즈(Pangkaj)형제와 동행하기로 하였다. 5월 중순에 부탄 국경이 있는 ‘자이거온(Jaigaon)’이란 도시에 도착하여 목사님을 만나서 부탄 선교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들과 사역 현황을 자세히 듣게 되었다.
‘저이거온(Jaigaon’)이란 곳은 인구 10만 정도 되는 부탄국경과 접해있는 인도의 도시이며 반대로 부탄 쪽의 접경도시인 푼솔링(Phuentsholing)이란 곳도 인구가 10만정도 되는 부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로 두 나라는 무비자로 왕래가 가능하기에 수시로 양쪽 국민들이 국경을 왕래하고 있었다. 그런데 특별히 1989년도에 부탄이 새로운 정책 곧 "One Nation, One People"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부탄 안에 있는 외부에서 이주 해온 부족 가운데 가장 큰 부족(전체부탄인구의 30%)인 네팔부족민들에게 같은 언어, 같은 문화를 따르지 않으면 박해를 가하고 추방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래서 쫓겨난 이들 가운데 일부는 이곳 국경 도시인 ‘저이거온’에, 일부는 인도 북부의 여러 다른 도시들로, 마지막으로 1992년에는 8만 여명이 네팔 동쪽 “자파”라는 지역에 유엔이 마련한 부탄 난민 캠프로 이주하여 거주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저이거온’에 부탄에서 내려온 네팔 사람들을 중심으로 교회가 개척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이 John Bhutia목사님을 통해 3개의 교회가 개척되어져 현재는 uruna Ch.에서 사역하고 계셨다. 이 저이거온 도시 전체에는 현재 30여개의 교회가 개척이 되어 있는데 대부분의 교회가 네팔인들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부탄 내에 개척되어진 여러 가정 교회들 또한 네팔인들을 중심으로 교회가 움직여 가고 있고 이 저이거온 지역에서 대부분 부탄교회를 위해 기도하며 지원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부탄교회 중에 가장 큰 교회는 600여명이상이 모이는 교회가 하나 있는데 그 교회를 처음 창립할 때 3분의 리더가 힘을 모아 함께 교회를 개척하였는데 그 리더 가운데 한분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는 가끔 부탄 안에 들어가 부흥회도 인도하지만 일 년에 한 두 차례 부탄에 있는 교회 지도자들을 이곳 국경 도시로 불러내어 목회자 훈련을 하고 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부탄 안에 있는 교회들의 필요는 살아있는 풍성한 생명의 말씀이라며 이 일을 위해 더 많은 지도자들이 말씀으로 훈련되어 지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한 사역이라는 설명을 듣게 되었다. 앞으로 이런 사역들에 대해서 함께 협력해 나가자며 끄루나교회를 위해, 부탄의 사역을 위해 함께 중보한 후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교회를 떠나왔다.
그 후 주변의 여러 상황과 부탄 국경도시의 리서치를 위해 몇 날을 더 지낸 후 네팔로 돌아가기 위해 네팔 국경까지 타고 갈 차량을 수소문해서 하나를 렌트했다. 소형 택시 같은 인도 차량이었는데 앞에는 운전수와 조수가, 뒤에는 펑커즈 형제와 내가 지친 몸을 차량에 싫고 서둘러 그곳을 떠났다. 네팔로 돌아가는 털털거리는 작은 차량 속에서 날씨는 무덥고 몸은 지쳐있었지만 생각은 계속 주님께 향하고 있었다. 이것이 주님이 보여주시는 부탄 사역의 방향이며 함께 일할 사람들인지를 계속해서 묻고 또 묻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15년간 사역하며 익혀온 네팔의 문화나 언어, 그리고 가장 포커스를 두고 사역한 지도자 훈련 사역의 모든 것이 사장되지 않고 계속 부탄의 사역을 위해서도 아무런 장애물 없이 쓰일 수 있는 부탄 선교 현장의 상황을 파악하며 확인하고 나니 너무도 놀라울 뿐이었다. 그래서 다시금 주님께 마음속으로 묻고 또 묻고 있을 때 갑자기 “우당탕 꽝”하는 소리와 함께 나의 몸은 한 바퀴 휙 하며 차 안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차량은 2차선 도로 밖 갓길 옆에 뒤집어 진체로 있었고 주위에서는 몇 명의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옆에 있는 펑커스를 보니 괜찮은 것 같다고 하기에 빨리 이 차안에서 나가자며 문을 열려했으나 문이 열리지 않아 부서진 유리창을 깨뜨리고 그곳을 통해 무사히 차량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나와서 앞 자석에 있는 운전수와 조수도 문이 열리지 않아 못나오고 있는 것을 펑커스 형제가 밖에서 유리를 부수고 창문을 통해 빠져나올 수 있게 해주었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차량이 한적한 도로여서 80Km 이상으로 달리던 차량이 천천히 가고 있는 앞 차량을 추월하려다 반대쪽에서 오는 차량과 스치면서 핸들을 꺾고 브레이크를 밟자 미끄러지다 갓길 쪽으로 빠지며 차량이 나뒹굴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타박상 외에는 아무도 다친 사람이 없다는 것이 너무도 신기할 따름이었다. 죽을 수도 있었던 상황이 분명한데 아무도 다친 사람 없이 차량만 파손된 것을 보면서 “할렐루야! 주님이 살려주셨다고, 부탄 선교를 위해 주님이 생명을 연장시켜주셨다”고 펑커즈 형제를 향해서 스스럼없는 고백이 저절로 내 입술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다. 부탄 선교에 대한 하나님의 소명의 증거를 온몸으로 받아 확증하게 하신 주님께 거저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마음뿐이었다.
돌아오는 여정 속에서 주님은 저에게 다시 물으셨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 주님 사랑하는 첫사랑의 마음. 그 사랑이 날마다 새로워지지 않으면 이 사역은 가능하지 않다고 주님은 다시 저에게 도전하셨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제는 선교를 좀 안다고 그래서 내가 하던 방식대로 하면 다 될 거라고 생각하던 마음과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오랜 동안 선교지에서 헌신하고 있는데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아 섭섭한 마음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아신 주님은 바울의 고백을 기억나게 하시며 다시 한 번 더 선교의 주체는 하나님이심을 저로 고백하게 하셨다.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렇습니다. 주님! 당신의 도우심이 없이는 한 순간도 이 땅에 설 수 없는 자임을, 그분의 사역을 감당할 수 없는 무능자임을, 그래서 십자가에서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는 승리할 수 없는 자임을......
날마다 신령과 진리로 땅 끝에 서서 다시 오실 주님을 예배하는 예배자이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임재가 늘 목마릅니다. 더 가까이 더 가까이 나아가 그분하고 친밀해지고 싶습니다. 더 깊이 그분의 마음을 알고 싶습니다. 예배의 능력을 더 깊이 체험하며 살고 싶습니다. 그런 은혜가 이 척박한 영적 동토의 땅에서도 계속해서 부어지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주님을 더 닮아 변화되어 가는 주님의 자녀이고 싶습니다.
연약한 자를 위해 오늘도 중보 해 주시는 동역자님들의 기도가 다시 한 번 더 절심함을 고백하며 계속적인 중보를 부탁드립니다.
▣ 계속되는 네팔의 찬양 사역, 역사적인 첫 노방 전도 집회를 하다.
지난 5월 초순 어느 한 목회자로부터 지방에서 야외 찬양 전도 집회를 하자는 제안이 왔다. 야외 길거리에서 하게 되면 경찰의 집회 허락을 받아야 할 텐데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이미 그 지역의 목회자들이 허락을 받아 놓았다면서 같이 하자는 것이었다. 야외 전도 집회는 처음 하는 사역이라 두렵기도 하고 사고가 발생할 염려도 되며 더욱이 신분 노출이 제일 염려가 되는 부분이어서 한 주간 기도해 보자고 했다. 기도하는 가운데 평안을 주셔서 믿음으로 집회를 준비하기로 했다. 복음은 현지인 목회자가 전하고 찬양 팀원들은 자신이 예수님을 믿게 된 간증을 하면서 복음을 주제로 한 찬양들을 준비하여 사역지로 떠나게 되었다. 그곳은 카트만두에서 북서쪽으로 150Km 정도 떨어진 해발 2천m가 넘는 산마을이자 그 지역의 행정 중심 도시였는데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 무려 7시간이나 걸려서 그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무사히 도착케 하신 주님께 감사의 마음으로 현지 교회에서 팀원들과 함께 내일의 집회를 위해 중보기도를 하고 지친 몸을 차거운 콘크리트 바닥에 뉘었다. 모든 팀원들은 피곤함으로 이내 쉽게 잠들었으나 내일의 사역 생각으로 뒤척이며 쉽게 잠을 청하지 못한채 어느 듯 새벽은 밝아 오고 있었다. 11시에 집회를 시작하기로 하고 그 도시의 기관장들을 초대했는데 온다고 약속한 분들이 거의 1시간을 기다려도 오지 않아서 집회를 그냥 시작하기로 하였다.
밴드가 와서 쿵작거리는 소리가 신기했는지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함께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찬양이 몇 곡 연주된 후 팀원들의 간증이 시작되자 솔깃하여 듣는 이들이 많이 보이 시작했고 계속 이어지는 찬양들 가운데 흥이 나는 이들은 함께 춤을 추는 이도 있었다. 드디어 현지 목회자의 복음의 메시지가 선포되고 그 지역의 영혼들을 축복하며 하나님의 성호를 높이는 찬양을 드리며 그날의 전도 집회를 무사히 마치게 되었다. 힌두교의 우상과 라마불교의 우상들로 덥혀 있어 선교의 자유가 없는 이 땅에도 이렇게 하나님의 열심으로 인해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오늘도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는 전해지고 있음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지 집회를 주관한 자나 함께 동역함으로 온 우리 찬양 팀이나 감격과 감사의 찬양이 저절로 나와 또다시 우리들끼리 한바탕 목청껏 살아계신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 찬양하며 감사의 기도를 올려 드렸다.
한 달이 지난 후 이 소식을 전해들은 또 다른 지방의 한 목회자도 자기 마을에 전도 집회를 할 수 있도록 와달라는 연락이 왔다. 우리는 또 기도하며 하나님의 일하심을 계속해서 보기 위해 전도 집회를 하기로 결정하고 기도로 준비하면서 이번에는 시골의 작은 마을이라 나에게도 복음을 전할 기회가 주어지게 되어 믿음으로 복음을 선포하기로 결단하며 기쁨으로 준비하게 되었다. 그곳을 방문해 팀원들의 간증과 복음 선포, 현지 교회의 청년들이 준비한 복음의 메시지가 담긴 연극을 통해 마을 사람들에게 큰 감동과 도전의 시간이 될 수 있었다. 겉으로 드러난 결신자는 없었지만 뿌려진 복음의 씨앗을 통해 일하실 주님을 기대하면서 그 집회를 마쳤다. 이 두 번의 야외에서 하는 전도 집회를 경험하면서 그 동안 교회들 중심으로만 사역하였는데 이제는 더 적극적으로 복음의 현장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어 팀원들에게도 큰 도전이 되어 감사했다. 앞으로 새로운 사역의 방향을 보게 되면서 더 크게 일하실 주님을 기대함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많은 현지 교회들의 요구가 있어 11월 12-14일까지 “Worship Festival”을 준비하며 기도하고 있다. 이틀 동안의 예배 세미나와 마지막 주일은 온 교회들이 연합해서 한 자리에 모여서 “Worship Festival”을 가지기로 하였다. 예비된 강사들과 재정적인 필요, 영적인 필요들이 채워지도록 중보를 부탁드린다.
▣ 가족 이야기
15년 동안 네팔 선교 사역을 함께한 큰아들 지훈이가 이곳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저희 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미국 메사츄세츠 주 Worcester시에 위치한 WPI (Worcester Polytechnic Institute)대학에서 공학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지훈이를 위해 기도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부모가 선교사이기에 자녀 교육을 감당할 재정적인 여력이 없어 마음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왜 선교사들이 자녀들 때문에 선교지를 떠나게 되는지 이제야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일하실 것을 기대하는 믿음으로 보냅니다. 지훈이의 삶을 통해 부모 세대보다 더 크게 열방을 위해 일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중보를 부탁드립니다.
지수는 혈액속의 혈구 수치가 너무 낮아 백혈병이 아닌가 염려했지만 한국에서 검진 결과 평균치보다는 많이 낮기는 하지만 정기적으로 체크하면서 조심하면 큰 문제는 없다는 의사의 진단이 나와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계속적인 학업가운데 지치지 않고 건강하게 잘 지낼 수 있도록 중보해주세요.
또한 새롭게 단기 선교사 두 분이 저희 집에 머물며 함께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두 분은 찬양 팀의 예배 사역과 스튜디오 녹음 편집 사역 등을 함께 도울 것입니다. 언어 훈련과 더불어 빠른 현지 적응에 어려움이 없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평강이 섬기시는 교회와 가정위에, 사역위에 넘치시기를 기도합니다. 늘 승리하소서!
기도제목
1. 부탄 선교를 위한 베이스로 허락하신 끄루나 교회와 협력이
잘 이루어지도록.
2. 끄루나 교회 건축비가 속히 채워지도록(3천만원:50평정도)
3. 11/12-14까지 있을“Worship Festival” 행사에 필요들(강사,
집회장소, 재정(3백만원)이 채워지도록.
4. 새로 온 단기선교사들의 현지적응과 언어습득에 진보가 있도록
5. 지훈이의 새로운 대학 생활, 잘 적응하도록 좋은 만남 주시기를
부탄 김홍국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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