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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선교현장 > 아프리카 등록일 2009-08-06
작성자 관리자 (admin)
케냐, 카카메가 전도여행
전상훈 선교사


카카메가는 케냐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나이로비에서 8시간-9시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토요일 집회 때

항상 그랬듯이 아침 6시 30분에 나이로비를 출발하여 나쿠루, 케리초, 키수무를 거쳐 카카메가에 도착하였다.
케냐의 서부는 동부, 북부와 다르게 푸르른 곳이다. 나무도 많고 차 농사, 옥수수 농사를 많이 짓는다. 카카메가의 경우 사탕수수와 옥수수 농사가 주요 작물이다. 거리 마다 아이들의 경우 사탕수수를 입에 물고 다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목요일 오후에 카카메가에 도착을 하였다. 먼저 도착한 넬리 선교사를 만나서 그의 본교회의 담임 목사님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늦은 점심을 먹었다. 점심 식사후에는 그가 사역하는 교회가 마을을 둘러 보았다.

30명 정도 앉을 수 있는 공간에 주일마다 150여명이 예배를 드린다고 하였다.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농사를 짓고 사는데 지난번 케리초 방문처럼 먹고 사는데에 그렇게 큰 문제들은 없어 보였다. 물론 가난하여 신발 없이 맨발로 다니는 사람들은 이곳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먹을 것이 없어 죽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그만큼만 되도 케냐에서는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마을을 돌아 보았다.
감사하게도 우리를 안내한 길버트 목사가 이 지역에서 좋은 평판을 듯고 있는 사람이 었고 많은 사람들이 길버트 목사와 친인척 관계인 마을이어서 어려움 없이 이곳 저곳 다닐 수 있었다.

마을을 둘러 보며 발견한 것은 인구가 15,000명 정도가 있는 곳이고 복음적인 교회도 9개정도가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단들의 활동이 아주 활발한 곳이 이곳이었다.

카카메가에 방문하기 전 미리 조사해 본 결과 케냐의 서부쪽에는 이단과 사교 집단들이 다른 곳에 비해 많이 있고 활동이 활발하다고 알고 왔는데 역시 그 말이 맞았다.

이단들은 자기들 나름대로의 특징적인 옷을 입거나 모자를 쓰고 있었고 자기들이 모이는 곳에는 특별한 문양의 깃발을 꼿아 놓았다. 한국의 무당들이 자기 집에 깃발을 꼿은 것과 꽤 유사했다.

그리고 사교집단들도 꽤 많이 활동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함께 간 학생들과 나는 금요일 오전부터 사역을 시작하였다.
세명의 학생(제프 무붐보;잠비아, 곤다 고든;수단, 기초이;케냐) 들 모두가 나누어서 집집마다 방문을 하고 나중에 각각들 한 장소에 모여서 예배를 드림으로 오늘 일정을 마치기로 했다.

세 명의 학생들과 이 교회의 청년들이 함께 조를 짜서 먼저 교인들의 집을 방문하였고 교인들의 집을 방문해서 기도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학생들을 차에 태워 그들이 방문한 집들 근처에 내려 주었다. 그리고 담임 목사인 길버트와 그 교회 장로를 대동하고 거리가 멀어서 그동안 담임 목사가 방문하지 못한 교인들의 집으로 갔다.

먼저 지난 달에 아내와 아이를 한 꺼번에 잃은 부목사의 집에 갔다. 주중에는 목수로 일을 하면서 사역을 함께 하였던 부목사였는데 아내가 아이를 낳으면서 아이와 함께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많은 시름 가운데 있는 그를 방문하였지만 일을 나갔고 그의 어머니가 아이 하나를 안고 우리를 맞아 주었다.

인사를 하고 내게 기도를 부탁하기에 그 어머니를 위해서 기도해 주었다. 기도가 끝나자 그 부목사가 들어왔다. 그의 방으로 자리를 옮겨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기도를 하고 나서 용기를 갖으라고 권면한 후 자리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 그런데 그 집을 떠나면서 마음 한 구석에 안타까움이 있었고 안스러운 마음으로 그 집을 나왔다. 내일 집회 때 교회에서 보고 주일 예배 때 보자고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또 운전을 하여 다른 교인의 집으로 갔다. 말라리아에 걸려 아내는 누워있고 남편은 공사장에서 일하다가 다쳐 다리를 저는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간단하게 복음을 나누고 주님을 의지하자고 권면을 했다. 그리고 그 여인을 위해서 기도를 하고 나왔다.

다음 집으로 가는 길에 술을 사기 위해 기다리는 두명의 청년을 만났다. 길버트 목사가 우연치 않게 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술을 마심으로 생기는 않좋은 결과들을 이야기 하며 복음을 함께 나누었다. 그런데 그 옆에서 우리 일행을 보고 길버트 목사의 이야기를 듣던 한 여인이 갑자기 자기네 집으로 들어 와서 기도를 해 줄 수있겠냐고 물었다. 무엇인가 주님의 인도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술을 사러 왔던 청년들도 함께 가고 싶다고 하였다. 함께 그 여인의 초대를 받고 그 집에 들어갔다. 알고 봤더니 그 여인이 바로 술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파는 사람이었다.

길버트 목사가 자기네 부족 말로 열심히 전도를 하며 술 취하지 말아야 할 것을 나누었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씩 위해서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한 청년이 자기는 무릎을 꿇고 기도를 받고 싶다고 요청을 한다. 자기도 예수님을 믿고 싶다고 말하면서...
그를 위해 간절히 함께 기도를 했다. 그리고 그 청년들은 술 사는 것을 포기 하고 가기들이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갔다.

오후 3시 30분이 되어서 어느 한 교인집에 도착하였다. 차를 한잔 마시고 나서 쉬고 있으니 여러명의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다. 함께 예배를 드림으로 사역을 마무리하였다.

다음날(토) 아침 식사를 하고 교회에서 있을 집회를 준비하였다. 이번에는 학생들이 집회를 인도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제프 무붐보가 빠졌으면 한다고 요청을 하였다. 다른 때 같으면 말씀 전하는 것에서 빠질려고 하는 제프가 아닌데 왜 그런지 빼달라고 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내가 대신 오늘 집회를 인도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영어가 그리 자연스럽지 않은 내가 갑자기 설교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니 막막하고 난처한 상황이 되었다.

어떻게 하겠나..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가 준비한 것들을 뒤져보기 시작했다. 그동안 목회하는 학생들 교회를 방문하였기 때문에 영어로 준비된 설교가 있긴 있었다. 그런데 그냥 아무것이나 무작정 할 수는 없었다. 집회를 앞두고 계속 기도하는 수 밖에 없었다.

집회가 시작되고 한참 찬양을 불렀다. 그리고 함께 간 필립 기초이를 처음으로 말씀이 증거 되었다. 1시간 30분 가량을 필립 기초이가 설교를 하였고 곧 바로 2곡의 찬양을 또 불렀다.

그리고 이번에는 수단에서 온 고든이 설교를 시작하였다. 그 때까지 난 무엇을 설교해야 할 지 정하지 못하였었다. 기도하면서 그동안 해온 설교들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마음 속에서 내일 주일날 할 설교를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주일 설교로 준비해 온 것을 토요일 집회 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일 설교의 내용은 복음을 증거하는 것으로 준비하였었다. 그런데 그 설교를 지금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집회에 온 사람들을 보니 말씀을 들으며 적기도 하고 아멘으로 화답하는 것으로 봐서 이미 복음을 믿고 구원 받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이들에게 복음을 설명하고 초청의 시간을 주고 기도를 해야 하는가 내 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주일 설교를 이번 집회에서 전하기로 마음을 먹고 설교를 하였다.

예상대로 설교의 마지막 부분에서 복음을 믿을 것을 초청하였는데 모두가 믿는 사람들이었다. 한편으로 내가 잘못 생각하고 말씀을 전했나 하는 생각에 마음속으로 실망이 되었다.

그런데 뭐 이제 어떻하겠는가라고 생각을 하며 집회를 마쳤다. 4시간 정도의 집회였다. 집회가 끝나자 넬리 선교사가 자기네 집으로 점심 식사를 하러 가자고 한다. 그래서 일행들과 함께 넬리 선교사의 집으로 갔다.

넬리 선교사의 집은 교회에서 30분정도 떨어졌고 더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야 했다.
대부분의 길이 험하지 않고 좋았는데 넬리 선교사 집에 들어 가는 입구부터는 경사가 가파르고 길도 움푹 패인곳이 여러군데에다 어제 비가 와서 웅덩이 들이 여러 곳에 있었다.

속으로 차가 구덩이에 빠지면 어떻하나하는 생각이 들어 넬리 선교사에게 이 길로 가도 괜찮냐고 물으니 괜찮다고 대답한다. 사실 이곳 사람들은 자동차를 운전하고 다니지 않기에 위험한 도로 사정도 그것이 위험한지 알지 못한다.

아무튼 가파를 경사를 내려가는데 오른쪽으로는 웅덩이가 있다. 오른쪽 바퀴가 웅덩이로 떨어지지 않도록 정신을 집중하고 바뀌를 살짝 걸쳐서 경사길을 통과했다.

다행이도 자동차 뒤쪽의 밑이 살짝 긁히는 정도로 통과할 수 있었다.(참고로 자동차는 지프처럼 높은 차량이다) 여러 곳의 웅덩이를 통과하며 그의 집에 도착하였다. 물론 돌아올 때는 그 경사에서 미끄러지고 웅덩이에 빠져 긴장을 하고 고생을 좀 하긴 했지만 차가 뒤집어지지 않고 그만하면 잘 통과했다. 물론 함께 한 현지인들은 그것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모르고 지나왔다.

넬리 선교사의 집에 도착하니 그의 아버지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외국 손님이 방문해서 그런지 양복을 차려입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넬리의 어머니와 할머지 그리고 넬리의 큰엄마(넬리 선교사으 아버지는 아내가 두명이고 두번째 부인이 넬리의 어머니이다)와도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전형적인 루야부족 사람들의 집으로 인도되어 거실에 함께 앉아 이야기를 하고 점심을 먹었다.
점심은 넬리 선교사 부족이 좋아하는 닭고기 요리였다. 식사는 간단했다. 우갈리(케냐 사람들의 주식), 닭고기 그리고 그 닭고기에서 나온 기름이었다. 닭기름에 우갈리를 찍어 먹고 닭다리를 뜯었다. 가두어 놓고 키운 닭이 아니어서 그런지 얼마나 쫄깃 쫄깃한지 모른다.

식사를 하면서 속으로 함께 간 제자들이 넬리 아버지에게 복음을 전하였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넬리 선교사 아버지는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기초이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시킬까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잠자고 있었다.

그런데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넬리 아버지에게 나도 모르게 죽으면 천국 갈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분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나는 영어로 복음을 전하고 기초이가 통역을 하였다. 지난 번에 케리초 방문 때에는 학생들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나는 옆에서 지켜 보기만 하였다. 그 때 학생들의 복음 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처음 접근 때 아쉬웠던 점을 발견하였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신 이유를 좀 설명하였으면 하였다. 아무튼 넬리 선교사 아버지에게 그것부터 시작을 하였다.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아느냐?"를 시작으로 복음을 전하였다. 우리가 죄인인 것을... 그리고 어느 누구도 남을 구원할 수도 없고 스스로 구원받을 수도 없을 설명하면서 예수님을 소개하였다.

복음을 전하면서 발견한 것은 내가 넬리 선교사 아버지에게 전한 복음이 바로 전에 넬리 선교사 집에 오기 전에 집회 시간에 전하였던 내용이었다. 신기하게도 그 때 전하였던 복음의 내용이 그대로 생각이 났다. 설명을 하면서 막히지 않고 차근 차근 설명할 수 있었고 구원의 확신까지 짚을 수 있었다.

아! 이제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왜 제프 무붐보가 갑자기 집회 인도를 안했으면 한다고 했는지, 내가 왜 대신 하겠다고 했는지, 주일날 설교를 왜 토요일 집회 때 하게되었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주님께서 이 분에게 내가 복음을 전하도록 준비하셨고 나를 준비시키셨던 것이다.

아무튼 넬리 선교사 아버지에게 우리 모두가 죄인이고 누구도 그 죄에서 피할 수 없다고 설명을 하였다. 그분은 자신이 선하게 살면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조목 조목 죄에 대하여 설명을 하였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죄임을 설명하였더니 이분의 대답이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그러면 자기는 이제 어떻해야 하느냐?"라고 그가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예수님을 그 때 전하였다. 목사도 무당도 어느 누구도 나를 구원할 수 없다. 오직 예수님 만이 성경에서 하나님이 정하신 우리의 구원자이시다. 이 예수님을 영접하겠냐고 하니까 예수님을 믿겠다고 응답을 한다.

그냥 넘어가지 않고 다시 확인으로 돌아 갔다. 예수님이 자기를 위해 하신 일을 받아들이며 믿겠다고 한다.

함께 기도를 하겠냐고 하니까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않는다. 68살의 노인이 무릎을 꿇고 내 앞에 앉았다. 필립 기초이에게 영접 기도를 부탁하고 마지막 기도를 내가 인도하였다.

학생들과 함께 너무도 기쁜 마음으로 넬리 선교사의 집을 나왔다. 우리가 돌아가려고 하니까 넬리 선교사 어머니가 이것 저것을 싸서 나왔다. 콩, 옥수수, 아보가도, 사탕수수등을 정성스럽게 싸 주었다.

다음 날 주일 예배를 드리러 교회로 갔다.
어제 이미 주일날 하기로 한 설교를 하였기 때문에 주일 설교를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이곳 교인들이 열심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더욱 열심히 주님을 섬길 것을 권면하는 내용으로 지난 번에 했던 설교를 준비하였다.

그런데 설교를 하면서 설교 내용의 마지막이 과거에 묶이지 말고 미래를 계획하며 현재에 충실하자라는 내용이었는데 지난 금요일 방문하였던 아내와 아이를 한꺼번에 잃은 그 부목사가 내 앞에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필립 목사, 당신이 당신의 아픈 과거를 바꿀 수 있겠소?"라고 물으니 "아니요"라고 대답을 한다. 그래서 "그러면 그만 과거를 보내시요. 당신이 어떻게 해도 당신의 아픈 과거는 바뀌지 않소. 이제는 그만 미래를 계획하며 부름심에 현재에 충실하시요"

예배를 마치고 그 부목사가 내게 오더니 고맙다며 내 손을 꼭 잡아 주었다. 다시 한번 그에게 이만하면 됐소. 사역에 다시 돌아오시요라는 말로 권면을 하였다.

그리고 예배를 마치고 교인들의 뜨거운 환송을 받으며 그곳을 떠났다. 오후에 카카메가를 떠났기에 저녁 때쯤 케리초에서 하루를 잤다. 그리고 그 다음날 새벽에 출발하여 나이로비에 오전 11시에 도착을 하였다.


이렇게 학생들과 전도 여행을 다니는 것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운전을 해야하고, 낮선 곳에서의 위험에 긴강도 되고, 또 음식과 잠자리, 그리고 씻지 못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참 감사한 것은 이렇게 전도 여행을 다닐 때마다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경험하면 그 모든 불편이 기억이 되지 않는다.

주께서 구원을 위해 이런 저런 모양으로 역사하시는 것은 이렇게 현장에 섰을 때 보게 되는 특권이다.

아름다운 자연과 친절한 사람들, 다양한 환경과 문화 가운데에서 그곳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넓고 크신 분이신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우리는 자신이 사는 세계 안에서 하나님을 알아간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크신 하나님의 조그마한 모습을 보며 그것이 하나님의 전부인줄 알고 살기 쉽다.

그런데 말이 다르고 음식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 가운데 있게 되면 나와 다른 상황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역사하시는 동일한 하나님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내가 알았던 그 하나님의 또 다른 모습을 보며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넓고 크신 분이신지, 얼마나 다양한 모습을 가지신 분이지 보게 된다

이렇게 다양한 현장과 문화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다. 또 그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는 맛과 기대 때문에 또 짐을 싸게 된다.

이곳 사람들은 이곳에서 물을 길러다 먹는다. 사진으로는 잘 나타나지 않지만 이곳은 깊은 계곡이다. 20kg 짜리 물통에 물을 받아서 평지에 있는 집까지 한참을 계곡길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이곳도 역시 물을 길러 오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두번째 사진은 전형적인 이곳 가옥의 모습이다. 참고로 오른 쪽이 집이 넬리 선교사의 방이다.


출처 : 케냐 전상훈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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