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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신학 > 설교 |
등록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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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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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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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adm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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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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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46: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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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2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3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4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5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6 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 7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이시로다 여호와께서는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도다 8 여호와께서 맹인들의 눈을 여시며 여호와께서 비굴한 자들을 일으키시며 여호와께서 의인들을 사랑하시며 9 여호와께서 나그네들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들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 10 시온아 여호와는 영원히 다스리시고 네 하나님은 대대로 통치하시리로다 할렐루야"
오늘 본문은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마칩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다른 것은 다 잊어버려도 절대 잊어서는 안될 말이 있습니다. 무엇이겠습니까? 세상에서 제일 귀중한 단어는 바로 "여호와, 예수 그리스도, 할렐루야, 아멘"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다른 것 다 잊어버려도 이 단어만 알고 믿고 있다면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다른 것 다 알고 이 단어를 모르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어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앞의 두 단어 "여호와, 예수 그리스도"가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을 말한다면 다음 두 단어 "할렐루야, 아멘"은 그분들에게 드리는 우리의 믿음의 고백이요, 감사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본문의 시는 '할렐 시편'(146-150편)의 첫 번째 것입니다. '할렐 시편'들은 유대인 회당에서 아침 예배 때마다 낭송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모두 10절인데요 '여호와'라는 단어가 10번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4번나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계속 나오는 것은 하나님이 찬양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찬양의 대상이 세상 사람이 되는 것은 모두가 그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노래가 영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대상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3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4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고 말합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이 우리를 영원히 도울 수 없습니다. 결국은 그도 죽고 나도 죽습니다. 인간의 모든 생각은 소멸됩니다. 철학을 가지고 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컴퓨터만 하다가 죽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행에서 돈만 지겹게 만지다 죽어도 똑같습니다.
대개 세상 사람들은 우리 인간이 세상에 무엇 하러 왔는지 잘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흔히 기계론적인 인생관과 목적론적인 인생관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기계론에 의하면 사람이란 부정모혈(父精母血)로 출생해서 처음에 기고, 앉고, 걷고, 소년기가 되고, 청년기가 되고, 장년기가 되고, 노년기가 되고 그러다가 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저 시간이 지나는 대로 살다가 죽을 때가 되어서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목적론에 의하면 사람이란 누구나 목적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러면 무슨 목적을 가지고 태어났느냐 하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식이위대(食而僞大)'란 말이 있는 것처럼 우선 먹는 일이 큰일입니다. 그러나 그 먹는 것조차 성경은 고전 10:31-33절 "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목적은, 첫째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찬양하는 생활입니다. 로마서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되시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제자요, 주님의 특별한 소유가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피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나 죽으나 이 몸을 드려 주님을 찬양 할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 5절에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하나님을 자기의 소망으로" 두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 의지해야 실망과 낙담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르십니다. 그분은 영원하신 분입니다. 6-9절까지 그 이유가 설명됩니다. 왜 하나님만을 찬양하며 의지해야 하는가를 말씀해 주십니다.
첫째, 만물을 지으신 분이십니다. 본문 6절 "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창조주 이시기 때문입니다. 다른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은 것들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찬양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기독교는 찬양의 종교입니다. 교회는 찬양을 부르러 옵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셔서, 우리에게 찬양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찬양을 하도록 선물을 주셨습니다. 찬양하는 것이 예배의 핵심이며 중심입니다.
둘째,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 하나님만이 믿을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약속을 지키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10절 "시온아 여호와는 영원히 다스리시고 네 하나님은 대대로 통치하시리로다 할렐루야"라고 하셨습니다. 군대에서 아무리 무서웠던 고참도 제대할 때가 다 되면 무서워할 사람이 없습니다. 얼마 안 있으면 그만두기 때문입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레임덕(lame duck) 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성경을 구약(Old Testament), 신약(New Testament)라고 부르는 이유도 약속의 책이라는 뜻입니다.
셋째, 왜 하나님을 찬양해야 되는지 7-9절까지 9가지로 하나하나 설명해 주십니다.
7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이시로다
여호와께서는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도다
8 여호와께서 맹인들의 눈을 여시며
여호와께서 비굴한 자들을 일으키시며
'비굴한'(!ypiWpK]:케푸핌, 꿇은 자)은 염려와 고통으로 인해 마음이 눌리고 구부러진 사람을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의인들을 사랑하시며
9 여호와께서 나그네들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들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
여호와 하나님을 왜 찬양해야 되는지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이렇게 만들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제는 어떻게 찬양해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본문을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 1절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찬양은 기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으로 해야 합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합니다. 젓 먹던 힘있잖아요. 아이가 젓 먹을 힘이 없으면 예전 같으면 죽습니다. 그 힘은 마지막 힘이 있는 한입니다.
찬송은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심령으로 하는 것입니다. 시편 147:1절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함이여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함이 마땅히 행하여야 할 의무인 것입니다.
둘째, 2절 "나의 생전에, 평생에 여호와를 찬송하겠다"고 합니다. 시인은 자신이 살아있는 한 찬양할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자신의 존재가 계속되는 한 찬양하겠다는 것입니다.
영화 벤허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려 여기까지 왔습니다." 부자에서 노예로, 노예에서 권력자로 그리고 다시 평범한 시민으로 옮겨가는 그의 삶이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이끌려 왔다고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을 계속해서 찬양하겠다는 뜻입니다.
말로만 입으로만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지정의(知情意)를 포함하여 전인으로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시지 않고 각 사람의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찬양은 전인적으로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삼상 16:7).
우리가 사는 곳에는 어디나 찬송이 있어야 합니다. 왜요? 사람이 창조된 목적이 하나님을 찬송하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찬송은 성도가 맺어야 할 열매입니다. 히브리서 13:15절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고 하였습니다.
셋째, 3절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두 번째 까지는 시인 자신의 고백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세 번째는 백성을 위해 함께 찬양해야 하는 당위성을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혼자만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 억지 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복음은 정당하고 정확하게 전파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시편 145 1-3에도 "1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2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3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크게 찬양할 것이라 그의 위대하심을 측량하지 못하리로다" 시인은 찬양에 자신이 있습니다. 단순히 노래를 잘 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기쁨으로 찬양하며 크게 찬양합니다. 숨어서 하지 않습니다. 만인이 보는데서 합니다. 여호와를 자랑합니다.
시편 148:1 "할렐루야 하늘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며 높은 데서 찬양할지어다",
시편 149:1 "할렐루야 하늘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며 높은 데서 그를 찬양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왜 이렇게 크게 찬양하고, 높은 데서 찬양합니까? 만인이 들으라고 하는 겁니다. 함께 찬양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시키시는데 자신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변론하자고 하십니다.
시편 71:14-15에 "14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더욱 찬송하리이다 15 내가 측량할 수 없는 주의 공의와 구원을 내 입으로 종일 전하리이다"
시인이 노래하는 것은 자기혼자 좋자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 기쁨을 전하고 있습니다. 기쁨이 있는 사람, 찬양하는 사람은 반드시 복음을 전합니다.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 받기 위해서 나오는 많은 사람들을 향하여 한 말을 기억하시지요?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마 3:10, 눅 3:9) 했습니다. 나무가 좋으면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포도나무라면 포도를 맺는 것이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당연히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를 죄의 세력에서 해방시켜 주십니다. 소경의 눈을 여시듯이 우리의 심령의 눈을 밝게 해주시며 비굴한 자를 일으켜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주 예수 그리스도께 소망을 두는 사람에게 복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설교 : 주앙교회 이영제 목사
관련주소1 : http://jooang.chur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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