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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현장 > CIS(중앙아시아) |
등록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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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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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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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adm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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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흑해에서 온 선교 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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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수 선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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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지난 4월 3일 출국한 후 4월 9일 새로운 선교지인 러시아 흑해의 아나빠 시로 무사히 귀임했습니다. 4월 12일 이곳 현지인 교회의 교인들을 반갑게 만났습니다. 광고시간에 "한국을 떠나 이곳 러시아 흑해에 있는 우리 집에 무사히 잘 도착했다."고 보고하자 모든 성도들이 웃었습니다. 한국이 아닌 러시아에 우리들의 집이 있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2달 동안 조국에 체류할 때 저희들에게 보여준 사랑과 후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러시아 흑해 지역도 한국의 일기와 비슷하여 햇볕이 강하고 밝습니다. 이곳저곳에서 푸른 풀과 나무들이 자라 을씨년스런 겨울 모습을 전혀 볼 수 없습니다. 오늘은 아는 분의 도움으로 흑해에 대한 보충 자료를 드립니다.
흑해의 지정학적 발견
흑해 (黑海 Black Sea)는 유럽 남동부와 아시아 사이에 있는 내륙해(海)와,
서쪽으로 루마니아와 불가리아와 경계를 이루며 남쪽으로 터키, 북쪽으로 우크라이나와 접해 있습니다.
면적 약 42만 200㎢, 동서길이 약1,150km, 남북길이 약610km ,수심 약2,210m(최대수심)로 동쪽으로 러시아 연방과 그루지야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흑해의 표층 수온은 여름에 평균 30℃, 겨울에 6℃ 정도이며 표층 염분은 강을 통한 민물의 유입과 많은 비로 인해 18% 내외의 저염분입니다.
흑해 7500년前까지 담수호였으며, 흑해의 나이는 7500살로 판명되었습니다.
7500년 전까지 담수호였던 흑해는 지중해의 바닷물이 흘러들어 바다로 변했습니다. 이 대범람이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를 비롯한 중동지역의 홍수 신화를 탄생시켰다는 학설을 뒷받침할 증거가 발견됐습니다. 미국 내셔널지오그래픽 탐사팀은 터키의 시솝에서 약 193㎞ 떨어진 흑해 해저 95m 지점에서 7500여년 전 주거지 유적을 발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번 발견은 흑해의 수면이 현재보다 약 168m 낮았으며 7500년 전까지 흑해에서는 민물조개가 살았다는 탐사팀의 지난해 조사결과와 일치하는 것입니다.
학자들은 유럽의 빙하가 녹으면서 지중해의 수면이 높아졌고, 보스포러스 해협이라는 천연 댐이 막아내던 지중해의 해수가 2년 동안 흑해로 흘러들어
담수호를 바다로 변모시켰다고 설명했습니다. 펜실베니아대학의 프레드릭 하이버트 박사는 흑해가 담수호였을 무렵 사람들이 흑해 주위에 살고있었음을 알 수 있다며 이들이 중동지역으로 퍼져 나가면서 다양한 홍수 신화가 탄생한 것 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최초로 흑해를 찾아온 그리스인(人) 항해가가 연안에 살던 원주민에게 사살되었기 때문에 이 바다를 폰토스아크세노스(이방인에게 비우호적인 바다)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러나 BC 8∼6세기에는 연안에 올비아·판티카파이온·시노페 등 그리스의 식민시(市)가 발달하여 내륙의 스키타이인(人)들과 곡물·노예·포도주·무기 등의 교역으로 번영하였기 때문에 폰토스에우크세이노스 (이방인에게 우호적인 바다)라고 불렀습니다.
그후 BC 1세기에는 폼페이우스의 동방 진출로 남서안이 로마령(領)이 되었고 이어 BC 2세기 초에는 트라야누스 황제에 의하여 연안의 대부분이 로마 제국에 편입, 로마의 내해가 되어 비잔틴 제국에 계승되었습니다
슬라브인(人)이 북서안에 진출하기 시작한 것은 6∼7세기이며, 9∼12세기의 키예프 루스 시대에는 [루스의 바다]라고도 불렀습니다. 13세기에는 몽골인(人)의 유럽 침입에 의해서 슬라브의 세력이 한때 후퇴하였고 이어서 15∼16세기에 오스만투르크가 연안 지역을 정복하고 투르크의 바다가 되었을때 비로소 흑해라고 불리웠습니다. 이는 광막한 바다에서 이따금 때 아닌 폭풍이나 짙은 안개로 위험에 휩싸이게 되는 데서 유래하였습니다.
근세 이 투르크 제국이 쇠퇴하기 시작하자 러시아의 남진이 재개되어(17세기 말) 표트르 대제(大帝)의 아조프 점령에 이어 수차의 러시아-투르크전쟁에서 러시아는 차차 흑해의 지배권을 장악하였고(18∼19세기) 이윽고 지중해로 진출할 태세를 갖추었습니다. 여기에 열강(특히 영국·프랑스)의 이해가 충돌, 결국 크림 전쟁(1853∼1856)을 초래하였습니다. 러시아는 패배하여 기득권(특히 함대 보유권과 연안 요새 구축권)을 상실하고 흑해의 중립화가 확립되었습니다.
러시아는 그후에도 집요하게 지배권의 회복을 도모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후의 로잔 회의(1922∼1923)와 몽트뢰 회의(1936)를 거쳐 현재 흑해는 모든 나라의 상선(商船)에 개방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군함에 대해서만은 연안에 영토가 없는 나라일 경우 제한(4만 5,000t 이상은 집결할 수 없음)을 받습니다. 출입구인 보스포루스 해협과 다르다넬스 해협의 군함 통항권도 끊임없이 국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터키는 전시에 한해 이 해협을 모든 나라의 군함에 대해서 폐쇄할 수 있습니다.
신(新)냉전 긴장의 바다 흑해
흑해함대 (黑海艦隊)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에 통제권을 둘러싸고 심각한 마찰이 빚어지고 있는 구소련의 대표적인 함대입니다. 우크라이나 크리미아 반도의 세바스토볼 항을 모항으로하는 이 함대는 지중해에서 미6함대에 맞서는 전략적 기능을 수행해 왔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자국내에 기지를 두고 있는 흑해함대 중 비핵탑의 전력은 우크라이나에 귀속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러시아는 독립국가연합(CIS)의 전략통합군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http://cafe.daum.net/unbon에서 참조
가정 소식
음식물에 관한한 조국은 언젠나 천국같습니다. 두 달동안 조국에 체류하면서 장선교사 내외 모두 3키로 정도 체중이 증가했습니다.
임선교사에겐 아주 좋은 일이지만 장선교사에겐 그리 좋지 않습니다. 선교지에서 체중 감량을 위해 별도로 노력해야 합니다. 귀임하면서 모스크바에 수학 중인 아들 한길이도 만났습니다. 그는 건강하고 열심히 학업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일년에 길어야 일주일 정도 만날 수 있을 뿐입니다. 일년 반 뒤 모스크바우주항공대학원을 졸업합니다.
그리고 한국과 기후가 비슷하므로 임선교사도 이곳 흑해 지역에서 잘 지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가족들의 영육 간 강건함과 성장을 위해 계속 기도하여 주십시요!
러시아 상황
1. 경제
지난 두 달간 러시아 루블의 대미 환율이 20% 이상 떨어졌고 투자 자금의 회수로 인해 러시아 전역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건축 현장들이 중단되어 볼성 사납게 흉한 몰골만 드러내고 있습니다.
러시아인들도 향후 경제 사정을 예측함에 있어 인플레가 계속될 것이라고 주장하는가하면 디플레가 올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개방 이후 지금까지 러시아에서 물가는 계속 오르기만 하고 내린 적이 없었기 때문에 엇갈린 예언이 나옵니다. 귀임한 후 물가가 대단히 올랐음을 확인했습니다. 루블의 약세가 그대로 물가에 반영된 결과입니다.
러시아가 주로 수출하는 원유 가격이 50달러 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원유 채굴 원가가 50달러임을 감안한다면 향후 러시아 경제 사정은 한 동안 그리 밝지는 않을 것입니다. 2014년까지 1조 달러에 달하는 석유회사가 될 것이라고 여겨졌던 '가즈프롬'이 정부에 금융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가정 난방용으로 주로 사용되는 가스의 최대부존 국가인 러시아가 가스를 무기화하기 위해 OPEC같은 카르텔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리고 미국 달러의 약세를 예상하며 러시아 정부가 달러를 유로로 바꾸려고 합니다.
이런 흐름은 어떤 식으로든지 러시아 선교에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원화가 강세를 보이고 루블이 한 동안 약세를 보인다면 러시아에 주재한 한국 선교사들의 사역은 계속될 것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세계와 러시아의 경제 사정이 전개될지 어느 누구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지 하나님의 나라에는 유익할 것입니다. 이런 소망이 있기에 주님만 바라보며 기도할 뿐입니다.
향후 러시아 선교를 위해 기도하여 주십시요!
2. 문화
러시아 텔레비존 방송은 '이먀 러시야(러시아의 이름)'이란 프로그램으로
지난 일년 동안 시청자들의 투표로 러시아를 대표할 인물을 정하려고 했습니다. 년말에 마침내 정해졌습니다.
우리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은 알렉산드르 넵스키가 뽑혔습니다. 러시아 건국에 중요한 인물임에 틀림없습니다. 1위부터 4위까지의 인물들이 모두 50만표 이상 지지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이들 중 세 번째 인물로 스탈린이 끼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그가 러시아인들에게 여전히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음이 증명되었습니다.
이 사실에 방송인들은 상당히 당황스러워 했습니다. 러시아인의 국민 의식 수준이 낙후된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절대 권력은 반드시 부패하며 국민을 괴롭게 만들지만 역설적으로 러시아는 이 덕분에 한 동안 강국이 되었습니다.
현재 러시아에서 푸틴의 인기가 대단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과거의 번영을 그리워하는 민족은 이 때문에 역설적으로 독재자를 원한다고 합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히틀러가 독일을 장악하고 그리고 김대중과 노무현정권 이후 한국인들이 박정희 대통령을 좋아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러시아 교회 지도자들이 러시아가 다시 공산주의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한 때 두려워했습니다. 러시아의 종교나 선교 상황이 하루 아침에 호전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인류의 문화나 의식은 하루 아침에 변하지 않고 서서히 바뀝니다. 시내산 율법이 주어진 후 400년이 지나 비로소 이스라엘은 다윗왕국을 맞으며 안정되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1800년대 흑인해방을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약 100년이 지난 1960년대 흑인들은 미국사회에서 여전히 사회적 차별을 받았습니다. 2008년에야 비로소 미국인들은 흑인 대통령을 배출시켰습니다.
150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미국인들의 흑인에 대한 의식과 인식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기독교 복음이 한국에 들어온지 이제 겨우 150년 정도 지났습니다. 한국이 복음의 선진국이 되기 위해선 더 오랜 세월과 기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평안을 빕니다!
러시아 흑해에서
장창수, 임월조, 장한길로부터
기도 제목
1. 새로운 사역이 주의 뜻의 인도를 받도록...
2. 점점 나빠지는 러시아의 선교 상황을 위해..
3. 흑해 지역의 교회들의 부흥을 위해...
4. 임 월조선교사의 건강 증진을 위해...
5. 장 한길의 학업과 영적 성장을 위해...
6. 시베리아의 교회들을 위해
라스베트 교회(1차 사역교회)의 교회 건축을 위해...
까멘스까야교회(2차 사역 교회)의 건축을 위해...
크라스노옵스크 교회(3차 사역 교회)의 부흥을 위해...
7. 예전 조력자였던 신임 노회장 '알렉세이'목사의 사역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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