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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선교학자료 > 등록일 2009-03-09
작성자 관리자 (admin)
태국 카렌족 연구와 선교전략
김봉국
제1장 태국의 상황

1. 일반적 측면

태국은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며 세계 도처에서 관광객이 몰려오는 나라 중 하나로서 천연자원이 풍부하여 과거로부터 "풍요한 나라"라고 불리워 왔다. 국토면적은 한국의 2.3배 정도가 되며 인구는 5천5백만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주식은 역시 쌀이며 열대과일이 풍성하며 과거로부터 의식주 문제로 크게 염려하지 않으며 안일하게 살아온 민족이다. 태국인은 일반적으로 "미소의 나라"라고도 불러왔다. 또한 태국인은 민족적 자부심과 긍지가 대단하기로 유명한 국민으로서 소문이 나 있는데 이는 그들의 과거의 역사이해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태국은 지난 6백년 이상을 외세의 침략에 굴복하여 식민지 통치를 받아본 역사가 없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태국(Thailand)이란 국명을 사용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민족적 자존심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말뜻이 "자유의 나라"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태국인은 태국이 오늘날까지 이처럼 자유와 번영을 누리며 살아온 것은 불교와 왕가의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지배적이다. 태국의 불교는 부처의 가르침을 수정 없이 그대로 전수 받아 지키려고 하면서 개인의 해탈을 추구하는 소승불교에 속한다.
태국의 왕가는 이 불교를 처음부터 적극 수용하여 국교로 삼고 크게 숭상하여 왔는데 현재에도 왕이나 왕가의 사람들은 모두 불교도이어야 한다는 것을 법으로 정해놓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태국의 헌법에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되어 있으나 왕가의 경우는 종교의 자유가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초등학교로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불교를 가르치는 종교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태국인에 있어서 종교란 곧 불교를 가르치는 것이며 세계의 그 어떤 종교보다도 불교가 더 나은 종교요 가장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종교라고 굳게 믿고 있다. 왕가의 숭불정책으로 인하여 태국 전역에 사찰이 없는 데가 없고 중들이 없는 데가 없다. 한국적 상황과 비교해 본다면 오늘날 거의 모든 도시와 마을마다 새벽기도가 있는데 태국에는 아침마다 새벽시주가 있다.
특기 할 만한 사실은 태국의 사찰은 한국과는 상황이 달라서 산속에 들어가 있는 사찰은 별로 없고 도시나 마을의 한 복판에 들어와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상황은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말이 있다면 그것은 "불교왕국"이라는 말일 것이다.
태국인이 자랑하는 그들의 종교 곧 불교가 이처럼 공적을 외치고 있지만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을 멀리 떠나버린 인생들은 도덕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한 모습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태국은 국제적으로 창녀가 많기로 유명한 나라이기도 하며 동남아 나라들 중에서 동성연애자들도 엄청나게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따라서 AIDS환자도 가장 많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또한 별로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살인사건이 벌어지기도 하는데 그들은 윤회설을 믿기 때문에 다음 세상에서 조금 낮은 등급으로 태어나면 그뿐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태국인의 의식 속에는 하나님의 의식이 없기 때문에 범죄란 인간대 인간의 윤리를 범하는 것 뿐으로 심각한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불교는 계율은 있으나 하나님을 향한 계명은 찾아볼 수 없다.


2. 선교 역사적 측면

태국이라는 불교왕국에 기독교의 복음이 처음으로 전파되기 시작한 선교의 역사는 금년 들어 168년이 된다. 천주교는 이보다 한참 더 앞서서 들어와 선교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 프랑스, 영국 등지의 서구 선교사들이 들어와서 선교활동을 시작했을 때는 전도의 문이 열리지 않아 너무나도 어려운 상황에서 선교를 했다고 한다. 어떤 선교사는 18년 동안 선교하여 한 명의 신자를 얻어 세례를 주었다고 하니 그 어려움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복음에 대하여 처음으로 긍정적으로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 지역은 태국 북부의 지역이었다. 그들은 현재의 치앙마이를 중심으로 한 지역의 주민들이었는데 비교적 부지런하고 온건한 기질의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현재에도 이 북부 지역이 기독교 인구의 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태국이 기독교 선교를 노골적으로 반대하고 핍박한 역사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 때문에 핍박을 받아 순교한 역사는 치앙마이 지역에서 두 명의 경우가 있었을 뿐이다.
그들은 단순히 자기네들의 종교를 고수하며 기독교의 복음에 문을 열지 않았던 것이다.
태국인이 이처럼 자기네들의 종교를 고수하게 된 데는 종교적인 이유만이 전부는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서구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시작할 때에 서구의 문명이 자기들의 그것보다 더 발달했음을 깨달았고 서구 열강의 침략으로부터 자기들을 보호해야 된다는 생각이 그들로 하여금 기독교 복음을 경계하도록 만들었다고 본다. 고로 태국은 서양의 문물은 선교사들을 통하여 조심스럽게 받아들이면서도 기독교는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선교사들을 서구 열강의 식민지 통치를 위한 선발대 정도로 오해한 것이었다. 태국에서는 지금도 외세의 침략을 두려워하는 의식이 남아 있으며 기독교는 서양 종교이며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배신행위로 비난하고 있음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그러자 서구의 선교사들은 전도와 교회개척 등 직접선교를 하는 것보다 병원, 학교, 사회사업 등 간접선교를 통하여 서서히 전도의 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
태국의 선교역사상 교회부흥의 물결이 한번 태국 전역을 휩쓸었던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서구 선교사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내려온 부흥사겸 선교사였던 존숭(John Sung)에 의해서 일어난 부흥운동이었다. 지금도 태국의 교회들은 그 때의 부흥을 회상하면서 그리워하고 있다. 태국의 교회들 중 뿌리가 잘 박힌 교회들 대다수가 이 부흥운동의 결과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 부흥운동은 존숭이 지나가자 그 뒤를 잇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계속될 수가 없었다. 오늘날에도 태국교회에서는 이러한 교회의 부흥이 다시 한번 일어나기를 기대하고 있다.


제2장 카렌족의 일반적 상황

1. 기원과 분포
카렌은 오래 전부터 미얀마에 살고있다. 전설에 의하면 그들은 2600년 전에 티벳과 고비 사막에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약200년 전부터 태국으로 이주가 시작되면서 계속 국경을 넘어 들어오고 있는데 소수 부족들 가운데 최대의 인구인 약 40만명 정도가 살고 있는데 이는 산족 전체의 49.13%이다. 이들은 다시 Karen-skaw, Pwo, Pa-o, Bwe, Donsu 다섯 부족으로 구분되며 미얀마 내에는 480만명 정도가 거주하면서 독립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미얀마 내의 카렌은 상당수가 개화되어 약 50%가 기독교인인데 비해 북태에 거주하는 카렌은 오랫동안 분리된 관계로 미얀마 내에 거주하는 카렌과는 민족 의식에 있어서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미얀마에서 넘어온 난민은 방콕에서 서북부 지역을 중심 하여 북태지역으로 분산되어 난민촌을 형성하고 있으며 북태의 카렌은 치앙마이 서부지역에서 집단 적으로 거주하고 있는데, 치앙마이에는 소수가 살고 있다.

2. 마을과 가옥구조 그리고 의복
1)마을 : Karen은 다른 산족에 비해 고지대에 사는데 해발 500-1500㎥에서 군락을 이루며, 주로 산봉우리나 산비탈에 마을을 형성하고 살아간다. 그 이유는 주로 이동하는 삶 속에서 적의 공격을 최대한 막아 낼 수 있으며 우기에는 홍수의 범람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마을은 100년 전부터 정착해 왔다.
마을은 모체 마을을 중심으로 하여 가까운 곳에 집단적으로 공동체 형식의 마을 이루며 살고 있다. 카렌족은 타 부족 보다 이동을 적게 하는 편이지만 마을의 사제가 죽은 경우 이동은 필수 적이지만 가까운 거리로 옮겨간다. 이것은 사제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서 이다.
2)가옥 : 가옥의 구조는 주로 나무나 대나무를 이용하여 기둥을 세우고 땅으로부터 1 m 이상의 높이에 방바닥을 대나무로 자리를 만들어 깐 후, 같은 대나무를 이용하여 벽을 만들고 지붕은 넓은 나무 잎을 엮어서 덮는다. 이 집의 구조에는 창문이 없기 때문에 방안은 언제나 어두운 편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한 칸의 방바닥 중앙에는 가로 1m, 세로 60㎝ 가량의 부엌을 나무로 사각을 만들어 그 안에 흙을 넣고 3개의 적당한 돌을 흙위에 배치한 후 그 위에 냄비를 올려놓고 나무로 불을 피워서 음식을 마련하는 형태를 갖춘다. 이 작은 부엌 위에는 1m 가량의 높이에 줄을 매달아 시렁을 만들고 이 시렁 위에서 곡식이 나 기타 물건을 썩지 않도록 말리는 일을 한다.
밀림에서는 부엌 용품을 구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주로 대나무를 이용하는데 대나무 솥, 수저, 젓가락, 국자, 물컵, 물통등 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대로 이루어 진다. 특히 밥솥의 경우에는 크고 작은 대나무를 베어서 막힌 한쪽을 남겨두고 반대쪽을 벤 후에 쌀이나 콩을 넣고 약간의 물을 채운 후 나뭇잎으로 입구를 막고 불에 적당히 그을리면 대나무 밥이 되는데 이것 을 "카우람" 이라 부른다. 이것은 밀림을 이동시에 주로 이용하는 식사이다.
가족들의 동거 생활은 대나무로 만들어진 한 칸의 방에서 생활하며 밤에는 부엌 쪽에 몸을 향하여 온 가족이 한방에 자는데 부모와 자녀들까지 합하여 가족이 한방공동체를 이룬다. 산하 제한을 원해도 방법이 없는 밀림에서의 가족의 수는 상당하다. 그러나 가족은 비교적 핵가족의 형태를 취하는데 그 이유는 주로 부모와 미혼의 자녀들로만 살아가기 때문이다. 결혼하면 분가해 나간다.
3)마을제단 : 카렌은 유일하게 마을에 제단이 없는데 신성시되는 지역은 매장 지와 마을밖에 바람과 물의 신이 있는 지역이다. 카렌은 비교적 우상숭배를 하지 않은 민족으로 살아간다.
4)의복 : 의복은 남녀의 구별이 뚜렷하다. 모든 남자들은 태어나서 죽기까지 붉은 색 바탕에 여러 가지 실을 군데군데 매달은 붉은 옷과 붉은 가방을 멘다. 이 붉은 가방은 곧 그들의 일생을 담고 가는 가방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가방 속에서 그들의 생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 붉은 옷은 주로 할머니, 어머니, 누나가 베틀에 앉아서 몇 개월에 걸쳐 손수 베를 자아 만든 옷들이다. 남자들은 베틀에 앉지 않는다. 이것은 남자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자들은 결혼 전 까지는 하얀 옷을 입는다. 이 하얀 옷은 여자들이 손수 만들어 입거나 또는 자녀들에게 입혀준다.
여자들은 어려서부터 길쌈을 배우고 15-17세가 되어 시집을 갈 무렵이면 작은 대나무 집을 짓고 이 작은 골방에 들어가 장차 만날 낭군을 위하여 베틀에 앉아 옷감을 짠다. 남자의 붉은 정장, 가방, 머플러, 보자기, 작은 액세서리, 그리고 자신이 입을 붉은 옷감에 여러 색을 곁들인 결혼 예복을 준비한다. 시집을 가는 여자는 붉은 옷감에 여러 가지 예쁜 색의 실을 곁들이고 수술을 다는 축복을 누린다. 그리고 카렌 사코의 여자들은 유일하게 검은 색 천에다 붉은 색 천을 절반쯤 연결하여 만든 옷을 입는다.
그렇지만 결혼하지 않거나, 못하는 여자는 일생 흰옷과 함께 정절을 지키며 살아간다. 카렌의 여자나 남자들은 다른 부족에 비하여 비교적 정절이 강하고 삶이 아름다워 "하얀 마음"이라는 칭호를 영국의 총독으로부터 수여 받기도 하였다.

3. 법과 추장
마을의 추장과 무당은 그 조상들과 지역 신을 연결시키는 중개인으로 추장의 결정은 영적인 세계에서 직접 온다고 믿고 있으므로 그는 많은 존경을 받고있다. 추장은 세습적이나 혈통성에 있어서 그 추장의 형제 중에 뽑히며 그 형제가 없으면 아들이, 아들이 없으면 가까운 친족 중에서 선출된다. 추장은 마을의 대표자로서 마을을 옮기는 때와 장소를 결정한다.

4. 농업형태
카렌족은 그들의 생존에 필요한 경제적 부분을 주로 농업을 통해서 해결한다. 토지를 유일한 생존 수단으로 삼고 있는 이들은 태양, 비, 바람등 기후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으며 전천후 자연 영농을 하고 있다. 화전은 이들에게 가장 많이 이루어지는 농사이다.
정착이 된 후에는 천수답을 만들어 경작하고 지역에 따라 현대의 농경 형태를 갖추고 있기도 하다. 과수원을 만들어 경작하는데 카렌족은 차, 망고 ,사탕수수, 레몬, 파인애플 등을 많이 재배한다. 산 쌀의 경우는 10-11월에 거두어 들 인후 집 모퉁이에 곡식 창고를 만들어 저장해 두고 이것을 매일 새벽마다 디elf방아로 찧어서 하루하루 밥을 지어먹는다.
가축은 각 가정마다 닭, 소, 돼지, 개 등을 소유하고 있지만 축산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간혹 몇 가정들이 소몰이를 하는데 이것은 밀림의 지형적 조건을 이용하여 방목을 하는 형태로 아침에 소를 몰고 산이나 들로 나가 풀을 먹인 후 밤이면 다시 돌아오는 형식이다. 이것은 밀림의 가장 큰 수입 수단이지만 아직은 보편화 되지는 못하고 있다. 현대에 있어 발전된 산족들은 토마토나 양배추를 가꾸어 농가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 외에도 일반적인 생활 방식으로 우기가 이르면 밀림에 솟아나는 죽순이나 버섯, 그리고 많은 풀잎들이 생계 수단으로 이용된다.

5. 연애와 결혼
카렌족의 결혼은 종족간의 유대를 강화해 나간다. 그들의 결혼 규칙을 소개하면
-사촌 이내는 결혼을 하지 못한다.
-삼촌과 질녀, 고모와 조카 사이에는 결혼을 하지 못한다.
동남 아시아 소수민족가운데 카렌족이 성적으로 가장 보수적이다.

6. 결혼식
카렌족의 결혼식은 2-3일 동안 계속된다. 결혼식 날 신랑은 친구들과 함께 악대를 대동하고 춤과 노래를 부르며 신부집으로 간다. 결혼식이 끝나면 신랑과 신부는 신부의 마을에서 살아가게 된다. 이것은 모계중심 사회를 이루는 카렌족의 풍습에 따라 지속되고 있다. 그래서 부모와 오랫동안 함께 있기를 원하는 남자들의 경우 결혼을 늦게 하는 경향이 있다.

7. 출생
1)임신 : 카렌족 여자가 임신을 하면, 산모나 태아의 생명에 관계되는 금기 사항을 지켜야 한다. 이중에서도 특히 음식물을 조심 하여야한다. 임신 모는 딴 곳에서 가져 왔거나, 처음 보는 음식을 먹어서는 안된다.
2)출산 : 출산 때는 대게 남편, 어머니, 또는 친척들이 산모를 도와준다. 임신 모는 천장의 대들보에서 드리운 줄을 붙잡고 웅크리고 앉는다. 이런 자세는 임신모의 출산을 도와준다.
3)산후조리 : 출 산후 산모는 3일 동안 문밖 출입을 삼가고 화로 곁에서 지낸다. 산모는 자기 몸의 피가 갑자기 머리 위로 솟아오르는 것을 겁낸다.
그것은 바로 산모의 죽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말라리아 증세와 비슷한데 말라리아에 걸리면 온 몸이 심한 추위를 느끼며 심히 떨리고 두 눈에 흰빛이 나면서 초점을 잃고 설사를 하며 머리에 열이 오르고 온몸이 뜨겁다.

8. 죽음
카렌 족들은 죽은 자들의 영혼이 죽음의 왕인 쿠시드('Khu-See-du)가 지배하는 죽음의 나라로 간다고 믿는다. 내세는 마치 현세의 거울과 같은 존재라고 믿기 때문에 내세로 간 사람들은 현세에서 그가 했던 것처럼 농사도 짓고, 가축도 기르고, 인간 관계도 맺는다고 믿는다. 카렌족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죽으면 쿠시드가 지배하는 천국으로 가지만, 살아 있을 때 카렌족의 규율을 지키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멀어 진다고"
1)장례식 : 카렌의 장래 식은 아이들의 경우에는 죽으면 보자기로 싸서 산골짜기나 웅덩이에 버린 후 돌로 덮어 버린다. 이것은 조용히 진행된다. 그러나 어른들의 경우에는 관을 구입하여 시신을 넣고 2- 3일간 안방에 두고 이웃의 손님들을 접대한 후 기다란 통나무 두 개에 관을 묶어서 여러 사람이 매고 동구밖에 산골짜기로 가서 나무 무더기를 쌓아 두고 관을 위에 올린 후 화장을 한다. 모든 사람은 화장을 하는 동안 곁에 지켜 서서 모둔 것이 불타기까지 바라보다 불이 꺼진 후 돌아오므로 장래는 끝이 난다. 이때는 죽은 자의 전에 지녔던 소지품도 모두 함께 불태운다.

9. 카렌의 신화
카렌족의 신화에 의하면 옛날 이와(Y'wa)께서 한 동산을 만드시고 다나이(Tha-nai)와 에유(Ee-u)를 만들어 그곳에 살게 두시며 "동산에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일곱 가지 열매를 맺는 일곱 가지 나무를 두었노라. 그 중에 한가지 열매는 먹어서는 안된다" 하셨다.
그후 무코리(Mu-kaw-lee)가 찾아와 두 사람을 속이자 둘은 나무의 실과를 먹었다. 그리고 죽음과 슬픔, 질병과 고통이 시작되었다. 이와는 그들의 자녀인 형제들에게 한 권의 책들을 나누어주었다.
카렌의 동생인 백인 형제들은 열심히 책을 읽고 비법을 터득하여 하얀 날개(배)를 타고 서쪽으로 건너가 신천 신지를 만들었다. 그러나 카렌은 그만 실수하여 그 책을 잃어 버렸다. 그들은 백인 형제를 생각하며 언젠가 그들이 책을 가져 와서 구원의 길을 가르쳐 주리라고 믿고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날 한 회교도가 와서 한 권의 책을 카렌의 현자에게 주고 떠났다.
그러나 현자는 그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다시금 그들의 아우인 백인 형제가 책을 가지고 와서그 책을 읽고 이와 에게 돌아가는 길을 가르쳐 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백인 선교사들이 성경책을 가지고 왔을 때 일부 카렌족들은 그들의 신화적인 예언이 이루어 졌다고 믿고, 서둘러 번역하여 많은 이들이 신자가 되었다. 그들에게 성경을 번역해준 선교사는 누구일까? 그리고 천여 종류의 다신 사회인 미얀마에서 카렌족 이 종교적 순결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정말 백인 형제가 가져올 구원의 책을 기다림에서인가?
사진:이영제, 2009.3.4 TECA총회 카렌족 찬양

10. 카렌의 선교사
미얀마의 가장 유명한 선교사는 아도니람 져드슨(Adoniram Judson : 1788출생 - 1812파송 -1850년 봄 사망)이다. 그는 해외 선교를 위한 미국 위원회에 의해 파송 받은 회중파 교도 였는데, 선교지를 향해 가는 동안 침례교로 개종하였다. 윌리암 캐리의 예를 따라 그와 아내는 성경을 버마어, 타이어, 등 여러 언어로 번역하였다.
그들에 의해 개종한 현지인의 숫자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 중의 하나였던 고우 타 뷰(Ko-Tha-Byu)는 자기 종족인 카렌(Karen)족을 대량으로 회심 시켰다. 그후 카렌은 2차 대전후 미얀 마가 공산화되면서 자신들의 왕국을 잃고 사회의 불안정 속에서 조국을 떠나 가까운 국경을 넘어 주변국으로 이주해 오고 있다.
이들 중에는 더 많은 신자들이 섞여 태국으로 들어 왔다. 그러나 태국정부의 이주민에 대한 외교로 정책으로 말미암아 대부분 국경 지역에 머물러 살고 있다. 이제는 국가도, 국적도, 소유지도 없이 유랑하는 이들에게 누가 카렌의 선교사가 되어 영생의 복음을 알려줄 것인가? 그들은 아직도 기다리는데!
우리는 지금까지 태국의 역사와 관련된 카렌족의 몇몇 이야기들을 살펴보았다. 그 이유는 지금도 그들에게 이와의 이야기를 들려줄, 그리고 구원의 길을 알려줄, 바로 그들의 형제를 그들은 고난의 현실 속에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누가 그들에게 희망과 소망의 소식을 알려줄 것인가!


제3장 카렌족 목회자 현황

1. 목회자 교육현황
카렌족 목회자의 상당수가 무학력자이다. 목회자의 60% 이상이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거의 모든 목회자가 그 마을 출신교인 중 열심히 있는 교인을 택하여 담임목회자로 세우기 때문에 태국인들에 비해 학력은 물론 태국어에 대한 이해 능력과 떨어진다. 물론 태국어로 말하거나 의사소통에는 별 무리가 없지만 태국어를 읽고 쓸 수 있는 목회자는 불과 30-40%에 불과하다.
반면 카렌어에 대해서는 의사소통은 물론 쓰기와 읽기에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이런 이유로 해서 태국어를 사용한 목회자 훈련은 다소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특히 목회자란 성경을 가르치는 교회의 지도자이고 성경과 신학지식에 관해서는 전문가여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신학교에서 신학교육을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카렌 목회자중에는 신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목회자가 30% 이상이다.
신학을 공부하지 않은 목회자가 과연 설교를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이 과연 제대로 성경을 가르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기본적인 신학적 교육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게 요청된다. 현재 카렌 목회자의 60% 정도가 카렌 총회 신학교 출신임을 감안 할 때 총회신학교의 비중이 아주 크다고 볼 수 있겠다. 더불어 성경학교 수준인 총회 신학교를 졸업한 이후 목회자들에 대한 재교육 문제가 큰 관심 사항으로 남게된다.
2. 목회자의 생활
거의 모든 카렌족 목회자들은 태국 교회의 일반적인 목회자들에 비해 뚜렷한 차이가 있다. 그것은 카렌 목회자들이 목회 사역뿐 아니라 자신의 생계비를 책임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97명의 카렌 총회 목회자들 중에 교회에서 사례비만으로 생활하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고 할 수 있다. 세 명이 특별한 생계수단 없이 목회에만 전념하고 있는데 그중 단 한 명의 목회자만이 사례비만으로 생활이 가능한 형편이고 나머지 경우는 대부분 부인이 경제적인 보조를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카렌 목회자들의 사례비는 두 종류이다. 첫째는 현금이고 둘째는 쌀이다. 사례비는 교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쌀만 조금 주는 데에서부터 월 3000밧 정도의 사례를 받는 이들도 있는데 일반적으로 보면 100탕 내외의 쌀과 5000밧 내외의 현금을 받고 있다.
교회에서는 목회자에 대한 경제적 책임을 전적으로 지는 것이 아니라 감사의 표시로 목회자의 농사를 같이 도와주고 쌀과 돈의 일부를 지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액수는 일반 태국 교회 목회자들에 비해 반정도 수준에 머무르는 수준인데 그 이유는 카렌 교회의 목회자들이 어떻게 세워지는지를 알면 이해할 수 있다. 이들 대부분은 자신이 평신도였을 때부터 이런 상황을 보면서 자랐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어렵거나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전적으로 목회에 전념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 자기의 생계를 위해 일하면서 목회사역 또한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는 숙제이다.

3. 목회 사역
1) 기도
기도는 목회 사역뿐 아니라 일반 그리스도인의 삶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역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카렌 목회자들과의 면담을 통해 확인한 바에 의하면 이들 중 특별한 기도 시간을 가지는 목회자는 많지 않았다. 기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규칙적이고 그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것인데 카렌 목회자들의 대답을 분석해 보면 대부분 10분 이내이고 규칙적이지 않았다. 그들은 하루에 두 세 번 교회나 집에서 기도한다고 하지만 확신 있는 대답이 아니었다.
한국식 통성 기도는 목회자들마저도 익숙해 있지 않을뿐더러 경계하는 눈치마저 있을 정도이다. 하나님께서 카렌 교회의 역사 가운데 많은 은사를 주셨을 것인데 기도생활에 관해서는 특별한 갈급함이 요청된다. 이 부분은 눈에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계속 연구해야 할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기도에 열심하는 카렌 신학생들이 전도하고 교회를 세우는 과정속에 나타난 결과들을 볼 때 그리고 악한 영들에 묶여 있는 영혼들을 생각하며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영적 전쟁터임을 감안할 때 더욱 구체적이고 공격적이고 역동적인 기도가 절실하다. 이렇게 함으로 기도와 진리를 바탕으로 한 영적 권세를 회복하는 것은 목회자의 사역을 위해 매우 시급한 실정이다.

2) 설교
설교자란 목회자의 또 다른 칭호이다. 이것은 그 만큼 설교가 중요함을 의미한다. 카렌 목회자들은 대개 일주일에 두 세 번, 한 달에 두 세 주 설교하고 있다. 설교 횟수는 많지 않지만 이들이 준비하는 것을 확인하면 설교 준비에 적지 않은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신학교를 졸업했거나 특별히 훈련을 받은 경우는 그래도 좀 낫지만 큰 틀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카렌어로 된 성경 사전이나 참고서는 1997년 출판된 몇 권이고 태국어로 된 것은 언어와 경제적인 문제로 구입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 대개의 경우 성경과 찬송가를 제외하고 목회와 관련된 책을 5권 이상 소유한 목회자는 특별한 범주의 목회자라고 할 수 있다. 목회자는 참신한 사고와 관념들을 자극시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그리고 정보를 획득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좀 더 바르게 이해하고 특별히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서 독서를 해야 하는데 카렌족 목회자의 경우 독서는 일반적이 아니라 매우 특별한 경우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설교 준비와 영성 생활을 위해서는 성경 읽기와 묵상이 사실성 유일하게 책을 통해 얻는 것이기 때문에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것은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조사에 의하면 카렌족 목회자가운데 성경을 하루 10장 이상 읽는 목회자는 한 명밖에 없고 그 외 성경을 일생동안 완독한 숫자는 가장 많이 읽은 목회자가 10번 그 외에는 두 세 번이 고작이다.
설교의 주제는 필요한 메시지의 선포 대신에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거나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나 한 가지 사건을 확장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즉흥적이고 무계획적인 설교는 교인은 물론이고 목회자 자신에게도 영적 고갈의 위험이 있다.
지금은 태국 사회와 구별되어 살고 있지만 멀지 않은 장래에 카렌 마을에도 물질 문명과 현대 세속 주의가 여과없이 들어갈 것이다. 특히 젊은이 중심으로 성경적인 안목과 방향을 제시하지 않으면 카렌족의 장래는 밝지 않다. 카렌 교회와 카렌 목회자들을 위해서 설교를 발전시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고 급한 일이라 하겠다.
3)심방
목회자의 가장 중요한 사역은 교인들의 여러 문제를 이해하고 확인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면학 치료하도록 하는 것인데 이것을 일반적으로 심방을 통하여 이루어지지만 카렌 교회가 산과 밀림과 오지라는 환경 속에 있기 때문에 심방의 개념이 다를 수 밖에 없다. 오지의 생활은 복잡하지 않다. 마을도 대개 20가구에서 100가구 내외인데 가옥들이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대부분 가옥들이 붙어서 지어져 있기 때문에 옆집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이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서 심방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목회자의 심방은 오히려 영적인 권위와 측면에서 접근하고 싶다. 총회에 속한 적지 않은 마을이 집단 개종 내지는 주민들의 상당수가 기독교인 마을들이 있는데 이런 경우 마을에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목회자의 역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당수의 마을들이 목회자의 권위나 역할을 주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어디 있을까? 많은 마을이 친족공동체이고 목회자는 연장자가 아니다. 목회자의 친척도 있고 부모들도 같이 산다. 대개의 마을에는 목회자보다 공부를 많이 한 촌장이나 공무원이 있는데 지적으로도 이들보다 뒤쳐져 있다.
이런 외형적인 상황도 목회자의 역할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지만 만약 목회자가 영적으로 특별하게 서 있다면 분명히 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카렌 목회자들에게 더욱 요청되는 것은 심방 그 자체보다도 영적인 리더쉽을 가지고 교인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안내할 수 있는 안목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4)행정
카렌족의 교회의 규모는 대부분 크지 않다. 그러므로 목회자가 교회의 행정에 많은 시간을 소비할 상황이 아닐뿐 아니라 교회 행정의 상당한 부분이 평신도에게 위임 내지 맡겨져 있다. 일반적으로 카렌교회는 침례총회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장로가 없고 집사가 장로의 일을 대신 하는데 카렌 교회의 특징은 침례총회에 속하면서도 장로가 세워져 그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의 운영위원회가 있고 담임목회자가 위원장이지만 헌금이나 교회의 중요한 의사결정 사항도 대개의 경우 평신도에 의해 결정되는 경향이 강하다. 목회자는 예배인도와 설교이외에는 평신도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오지에서 고도의 목회행정이 필요한 상황이 아님을 고려할 때 카렌족 상황에 맞게 적용되리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카렌총회의 행정은 상당한 체제를 갖추고 있고 노회도 대개 전임총무가 있어서 노회 업무를 관장하기 때문에 행정에 관한 어려움은 별로 없고 지 교회도 수십년 내려오면서 일종의 행정의 틀이 있어서 유지되고 있다.


제4장 카렌족 선교와 관련된 문제들

1. 카렌 난민
현재 태국에는 미얀마와 접한 국경을 중심으로 상당수의 카렌 난민들이 있는데 이 카렌 난민 문제는 단순한 카렌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미얀마와 태국 그리고 국제사회가 복잡하게 관계되어져있다. 그런데 그 문제의 본질을 찾아보면 약소민족의 아픔을 대변해주는 대표적인 사건이라고 하겠다.
일반적으로 이들을 부를 때 난민이라고 하지만 법적으로 엄밀하게 말하면 틀린 말이다. 국제법적으로 이들은 현재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적인 용어로 이들을 유민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들은 현재 UN의 보호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태국정부의 통제 아래 있다.
카렌족의 주류는 미얀마에 살고 있다. 약 450만 정도의 카렌인들이 카렌주와 델타지역에 주로 살고 있는데 이들이 미얀마 땅에 들어와서 살기 시작한 것은 매우 오래되었지만 주위의 미얀마, 몬, 사이암 족에 끼어서 한번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였다. 그래도 그 고난의 세월동안 고유의 문화와 전통을 잘 유지해온 평화로운 민족이다.
1949년 미얀마로부터 독립전쟁을 시작한지 50여년을 맞는 그들의 형편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1980년대 초 상당수의 영토를 잃고 태국으로 피난 나온 카렌족 난민수는 1998년 6월 약 115,000으로 추산된다. 미얀마 내에 있는 피난민까지 합하면 그 숫자는 더욱 늘어나는데 쉽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2. 마약
현재 태국이 가지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마약에 관한 문제이다. 카렌족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카렌 침례총회내에 마약 전담 선교사가 있는 것은 이들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증거이다. 38년 된 선교사의 증언에 의하면 최근 마약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해서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카렌족의 상당수는 마을이 적어도 한 명 이상의 마약중독자가 있고 그 중에는 물론 교인들도 있다. 심지어 어떤 마을은 마을 주민의 80%가 마약중독자가 된 마을이 있다. 추정에 의하면 카렌 침례 총회 내에만도 300-500명 정도의 마약 중독자가 있다고 하는데 그런 교인을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마약은 자신은 물론 가족에게도 치명적으로 문제를 일으킨다는 점에서 대책이 모색되어야 하는데 쉬운 문제는 아니다.

3. AIDS
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HIV 보균자 나라로 알려져 있는데 특히 태국의 북부 지방은 가장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최근 증가율이 대폭 감소하였지만 대부분 카렌족들이 바로 이 영향권인 북부 태국에 집중적으로 살고 있으므로 적지 않은 문제속에 있다. 지금까지 카렌 침례 총회에서만 적어도 17명이 AIDS로 사망하였고 앞으로도 몇 명이 근시일안에 사망할 전망이다.
특히 치앙라이와 그와 접한 지역에 집중적으로 피해가 나타났는데 다행스런 것은 정부와 각 사회 기관에서 대대적인 홍보로 지금은 상당히 좋아졌다는 것이다. 이런 피해는 우리가 알고 있듯이 대부분 성적인 관계를 통하여 전염되는데 일반적으로 카렌족은 다른 부족과는 달리 일부일처제를 전통으로 유지하고 있어 다행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젊은층의 경우 태국의 문화와 직접적으로 접촉하고 있어 더 이상의 안전지대는 없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런 모든 성적인 죄악들은 말씀의 조명속에 들어갈 때에만이 소멸될 수 있기에 재활치료사역과 더불어 근본적인 복음의 역사가 일어나야 하리라.

4. 혼합주의
흔히 산족을 연구하여 그 사정을 아는 학자들이 산족의 종교를 논할 때 자주 사용하는 말이 혼합주의이다. 불교가 오기 전에는 토속신앙만 있었는데 불교가 들어오자 불교와 혼합된 토속신앙이 자리를 잡았고 기독교가 들어오자 이제는 기독교와 기존신앙과 혼합된 혼합주의가 일부 산족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카렌족 마을을 방문하면서 확인한 바로는 세례를 받은 교인들이 다시 귀신을 섬기는 토착신앙으로 돌아가 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그들을 신앙으로 지도할 지도자가 없으면 이런 현상은 상대적으로 더 많이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다시한번 지도자의 중요성을 확인하게 되는데 광범위하게 흩어져 살고 있어서 지도자가 부족한 이들의 상황은 언제든지 이런 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또 한가지 장례식에 관한 것이 문제인데 장례식때 망자에 대하여 예의를 갖추는 것은 좋으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과 기대가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이다. 상객들이 관위에 꽃을 갖다 놓고 먹을 것을 갖다 놓는 것은 혼합된 종교의 모습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물론 바람직한 선교가 되려면 토착적인 면을 가져야 한다는 상황화의 필요는 인정하지만 복음이 왜곡되어서는 안되기에 더욱 삶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구체적인 적용이 있어야 하리라 믿는다.

제5장 카렌족 선교전략으로서의 목회자 훈련원
1. 카렌 목회자 훈련원의 필요성
카렌목회자 훈련원의 긴급한 필요성은 첫째, 앞에서 카렌 담임 목회자들의 현황을 살펴볼 때 확인된 것처럼 담임 목회자의 50% 이상이 초등학교도 못나온 무학력자라는 점이다. 무학력자란 단순히 배울 기회를 못가졌다는데서 그치지 않고 목회자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연구의 토대와 사회관계의 폭에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태국어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따라서 태국어로 훈련하는 훈련원이 아니라 카렌어로 훈련하는 목회자 훈련원이 시급히 요청되고 있다.
두 번째, 신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목회자가 많다는 점이다. 약 30%에 달하는 이들은 목회에 대한 기본지식이 단순히 경험이나 주위의 이야기를 통해서 들었을 뿐 사실상 평신도와 다를 바 없는 형편이다. 설사 신학교를 졸업했다 하더라도 이미 상당기간 지나 그사이 새로운 재충전의 기회가 없는 목회자들도 목회의 발전을 위해 재교육을 빨리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재로 많은 목회자들이 목회자 훈련원의 필요성을 느끼고 참여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셋째는, 그들의 목회현장을 확인할수록 목회의 가장 중요한 기도와 설교 그리고 영적 권위에 대한 보충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성경과 찬송가 외에 한두 권의 책이 전부인 한가지만 보더라도 그들의 목회를 지원할 훈련원이 시급히 요청되는 것이다. 이런 점은 카렌 침례총회 관계자들도 동일하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1996년 태국 기독교총회에 보고한 자료에 의하면 담임목회자의 문제와 대책을 아주 중요하게 취급하여 보고하였는데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성경, 목회, 언어(태국어)에 대한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자체 카렌족을 위한 목회자 훈련원이 시급히 요청된다고 하였다.
태국 기독교 총회의 각 노회의 목회자 수급현황을 보면 일반적으로 50%내에 그치고 있는데 이에 비해 카렌족의 목회자들은 모든 조직교회마다 있을 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미조직 교회에도 전도인이나 목회자가 사역하고 있는 것은 대단히 고무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계속 확인되는 것처럼 이들이 목회자로서 기본적인 자질을 논하면 많은 문제점들이 노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을 훈련하여 사역하도록 한다면 교회사역에도 많은 유익이 있을 뿐만 아니라 태국의 복음 사역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2. 방향
카렌족 목회자 훈련원이 어떻게 운영되어야 할 것인가는 그 필요성만큼 중요한데 현재 연구하는 단계에서 결론을 내릴 수 없지만 지금까지의 사실들을 확인해 볼 때 개략적으로 다음과 같은 방향을 가졌으면 하는데 상황에 따라 다소의 유동성을 가지고 있다.
1)카렌어로 운영
이 목회자 훈련원은 카렌족을 위한 목회자 훈련원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모국어인 카렌어로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왜냐하면 태국 카렌 침례총회의 모든 회의와 예배는 카렌어로 되고 있으므로 카렌어로 훈련받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더군다나 목회자의 상당수가 무학력자이고 보면 태국어는 이들에게 큰 제약의 요소이다.
앞에서 확인된 것처럼 약 50% 정도의 목회자들이 태국어에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의사 소통은 가능하지만 태국어로 된 문서나 서류를 확인하는데는 문제가 있다. 이것은 심지어 최근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카렌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일부 신학생도 비슷한 상황이다.
카렌어로 카렌족 목회자훈련원을 진행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들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들의 깊은 문제와 상황을 정확히 확인할 수 있다는 유익과 더불어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카렌족 목회자 훈련원은 카렌어로 훈련되어져야 할 것이다.
2)현지 지도자의 활용
카렌 목회자중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신학교를 졸업한 목회자들도 더러 있는데 이들의 일부는 태국교회에서 사역중이고 일부는 카렌 회에서 섬기고 있는데 이들은 언어적인 어려움이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카렌 교회의 상황과 카렌인의 심성을 공유하고 있는 지도자들이다.
이들 중 목회자 훈련원이 필요성을 인식하고 목회철학이 같은 지도자를 선발하여 필요한 강의를 하는 것은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비록 카렌 교회에서 사역을 하지 않은 경우라도 카렌 교회와 목회 사역에 대해 부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영적으로 학문적으로 좋은 본이 되는 지도자들을 발굴하여 교수요원으로 활용하는 것은 단순히 목회자 훈련원의 효과적인 운영이라는 면만 아니라 카렌인 스스로가 자신들의 목회현실을 계발하는 주체가 되게 한다는 유익이 있다고 본다.

3.카렌 목회자 훈련원의 사역 전망
1)목회자 수준향상과 교회의 부흥
지도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되고 길러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카렌어로 진행되는 목회자 훈련원은 카렌 교회 지도자들의 자질과 역량을 극대화시킬 뿐만 아니라 지 교회의 부흥을 불러 올 것이라 확신한다. 타 노회에서 실시한 목회자 훈련원의 결과를 참조해 보면 훈련을 받은 목회자들의 공통적인 대답은 2년 동안의 훈련이 목회자로서의 자질에 있어서 좋은 향상의 발판이 되었다고 고백하였다.
이미 부총회장이나 지도급의 목회자들이 훈련을 받고서 전체 카렌 침례총회내의 목회자들에게도 훈련을 권하고 있으나 언어와 지리적인 문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목회자로서의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사역 즉, 설교, 기도, 성경공부, 행정 등은 대부분의 카렌 목회자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인데 이런 부분에서 직접적인 도움을 준다면 현저한 향상이 있어지리라 믿는다. 뿐만 아니라 이런 준비된 목회자가 설 때 자연스레 교회의 부흥이 있다는 것이다.
목회자 훈련원에서 훈련받은 목회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훈련 이후 교회가 양적으로 질적으로 부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라 생각된다. 목회자의 성숙이 교회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2)미전도 족속 선교의 발판
카렌족은 14개의 언어군으로 나누어져 있어서 부족에 따라 복음화의 정도가 아주 다양하다. 그 중에는 40% 정도가 기독교인인 부족이 있는가 하면 미전도 종족으로 분류된 카렌족도 있다. 그러므로 카렌 지도자들을 잘 훈련시키면 이들 스스로 자신과 같은 미전도 종족의 복음화를 위해 헌신할 것이다.
특별히 카렌족은 선교초기부터 전도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민족이었다. 예를 들면 지금은 전체부족의 90% 이상이 그리스도인으로 분류된 미얀마의 까친족을 처음으로 전도한 부족도 카렌족이었다. 이런 전도의 열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어서 거의 모든 카렌 조직 교회가 전도처를 가지고 있다. 일찍부터 전도에 남다른 열정이 있던 카렌족 주위에 지금도 복음이 필요한 부족들이 많이 있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특히 카렌족 목회자 가운데 일부는 이웃 부족들의 언어에 대해 큰 어려움을 느끼지 못할 정도의 목회자가 있는 것은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으며 이들에게 선교의 사명을 재인식시킨다면 주위의 미전도 족속에 대한 복음화에 일익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제6장 결 론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지도자이다. 목회자의 수준이 곧 교회의 수준을 결정한다. 카렌족 교회의 성숙과 성장을 위해 카렌족 교회의 성숙과 성장을 위해 카렌족 목회자 훈련원의 필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시되고 있다. 여전히 85% 이상의 카렌족은 복음의 사각지대에서 살고 있다. 오직 주님만이 그들의 유일한 소망인데 주님의 은혜가 카렌족 가운데 충만하길 기도한다.

김봉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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