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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선교현장 > 동남아시아 등록일 2008-04-14
작성자 관리자 (admin)
태국에 살고 있는 고구려 후손 라후족 이야기


치앙라이 주위에는 12개 소수민족이 산에서 살고 있는데 제한된 산 속 지역에서만 살 수 있고 내려와 살 수 없다고 합니다. 태국 정부에서 국민으로는 인정하지만 정식 신분증을 발급해 주지 않기 때문에 도시에 와서 일할 수가 없고 자녀들을 도시에서 교육시킬 수도 어렵습니다. 도시로 보내 공부시키려고 노력하지만 허가 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

라후족은 그들의 조상이 흰 눈이 오는 나라였고 전쟁에 져서 중국에 포로로 끌려와 청해성 농우에서 살았다고 스스로 말합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고구려가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게 멸망한 후 당나라는 수만 명의 고구려 인을 붙잡아 중국 띵 불모지인 농우에 강제이주 시켰다고 전합니다. 농우라는 지역은 지금의 청해성 동남부 지역이고 그들의 전설과 일치합니다. 흰 눈이 내리는 한반도와 당시 고구려 땅이던 만주 벌판......

또한 인류학적으로 한국인의 세계적인 특징은 유전자 백혈구 항원 HLA-B-29 인데 라후족의 핏속에도 똑같이 있다고 합니다. 그들의 언어 속에서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많고 고구려시대의 兄死取嫂제가 아직도 지켜지고 있고 그들이 섬기는 환웅천왕은 바로 우리의 단군이죠.

이만하면 라후족이 우리 고구려 후손이라고 주장하는데 반론이 없겠지요?
고구려가 망한 게 660년대 인가요? 그러니까 1300여년 전 옛적의 고구려인 후손들이 태국 산 속에서 무리지어 살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태국 정부는 이런 고산족들을 관광 상품 정도로 여기고 있고......



출처 : 태국한인교회 박동빈


호수로 변한 치앙마이 산족교회 지역
글 : 이영제 목사

1995년도의 태국 북부 치앙마이 지역을 다녀오게 되었다. 이곳은 여러 종족이 산족으로 살아가고 있는 곳이다. 이중에는 약 1300년 전에 고구려가 나당(羅唐) 연합군에 의해 망한 뒤 당나라로 붙잡혀간 고구려인 후손일지도 모른다고 주장하는 라후족도 살고 있는 곳이다. 이 이야기를 좀더 해보면 이렇다. 신라는 당나라를 끌어들여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켰다. 당시 당나라 군사는 백제에서 12,000여 명, 고구려에서는 무려 38,300호(20여 만명)를 붙잡아 갔다. 김부식(金富軾)이 쓴 ?삼국사기?를 보면 “당나라 장수 소정방은 백제왕 및 왕족, 신하 등 93명, 백성 1만 2천명을 데리고 사비성에서 배를 타고 당나라로 돌아갔다.”고 적고 있으며 ?신라본기? 제6 문무왕 상편에 “그리하여 당나라 장수 이적은 고구려 보장왕과 왕자 목남, 덕남, 대신 등 20여 만 명의 포로를 데리고 당나라로 돌아가는데 신라측에서는 각간 김인문과 대아찬 조주가 이적을 따라가게 되고 인테, 의복, 수세, 천광, 흥원도 수행하였다”고 적었으며 고려조의 승(僧) 일연(一然)이 쓴 '삼국유사'에는 “소정방은 백제의 의자왕 및 태자 융, 왕자 연과 대신 및 장수급의 사람 88명과 그리고 백성 12,807명을 당나라의 서울 장안으로 호송시켰다.”라고 적고 있다.

이 많은 우리 동포들이 중국으로 붙들려가 김부식의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제 10편에 “당나라 고종은 우리나라 사람(고구려인) 38,300호(약 20여만명)를 잡아다가 강회(江淮)의 남쪽과 산남(山南), 경서(京西), 제주(諸州)의 광막한 땅에 옮기었다.”고 적었다(치앙마이, 매일경제신문사, 김병호, 1992, pp35-37). 이런 역사적 근거와 라후족의 말이 우리말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향진격 조사 “...로”가 같고 여격 “...께”는 “...게”로 호격의 “...아”등이 비슷하거나 같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전통 놀이와 지게 지는 풍습, 아이들의 색동옷 등도 같다.

한번은 방콕에서 소수부족의 상품전시회 행사가 열렸다. 이곳에 라후족으로 보이는 이들이 나왔는데 옷을 만들어 팔고 있었다. 하도 우리와 생긴 것이 비슷하여 그 주위만을 맴돌다 어린아이와 사진을 찍고 실로 짠 옷을 한 벌 사와 잘 맞지는 않았지만 입고 다닌 적이 있다.
치앙마이에서 차를 타고 치앙라이를 지나 트라이앵글 황금의 삼각지대인 중국, 라오스, 미얀마, 태국을 연결하여 흐르고 있는 강줄기가 있는 곳이다. 그러나 산 속 깊은 곳에는 강줄기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이 많이 있다. 산족의 교회는 초가지붕만 덮어놓고 나무로 만든 의자에 땅바닥이었다. 이 교회의 근처에는 약 30호의 집이 있었는데 건기 때라 물이 부족했다. 여인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물을 길어 나르기에 바빴다. 물을 기러오는 곳을 함께 따라가 보았다. 큰 웅덩이가 있는데 건기가 되어 말라있었으며 한 귀퉁이에서 한 방울씩 떨어지는 곳에 대나무로 물줄기를 간신히 만들어 받고 있었다. 이것이 이 마을의 생명줄이나 다름이 없었다.

우리는 이 마을을 떠나면서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당연히 이들은 ‘물’이라고 대답했다. 이미 이곳에 태국정부가 물이 나올 수 있는지 시추를 했지만 물이 나오지 않아 포기한 곳이라고도 말해 주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든 우물이 있어야 이곳에 계속해서 살수가 있다고 했다. 이들이 다른 곳으로 한집 두 집 이사가면 교회를 다른 곳에 세워야하고 교회세우는 일은 어렵지 않겠지만 모여서 신앙 생활하던 공동체가 무너지게 되고 다시 이들은 산속으로 흩어져 예전 생활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에 이 지역에 우물이 있어야 했던 것이다.

생각한 끝에 우물을 파주기로 생각을 모았다. 방법은 현재의 웅덩이를 더 깊고 넓게 파서 우기때 물을 모아놓고 건기 때까지 마르지 않게 하는 일종의 저수지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이 우물을 파는데 약 300여 만원이 든다. 한국에 돌아와 이곳을 후원하는 교회들의 도움으로 저수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필자는 다시 그곳을 방문하지 못했는데 선교사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는 그 저수지가 점점 넓어져 그 일대가 호수로 변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위의 다른 산족들이 내려와 예수 믿는 큰 마을이 되었다고 전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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