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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학자료 > 강의안 |
등록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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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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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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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adm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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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를 바이블로드로 전환시키기 위한 연합의 실천적 과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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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ask of the United Action for the Transformation of Silk Road as the Bible Roa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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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실크로드를 돌파한 올리비에와 네스토리우스처럼
나는 최근 ‘베르나르 올리비에’라는 프랑스 사람이 이스탄불에서 중국의 시안(西安)까지의 ‘실크로드’ 1만 2천 킬로미터를 걸어가는 도보(徒步)여행을 해낸 <나는 걷는다>라는 책을 읽은 일이 있다.
독일의 시인 하이네는 인간의 여행길이 철도를 통한 기차여행으로 바뀌게 된 1843년, “철도를 통해 공간이 살해됐다!”고 울부짖었다. 그 후에 자동차 시대가 열리더니 20세기 초반부터는 비행기 여행시대로 바뀌어 버렸다. 총알 같은 초고속 철도여행이 인간을 자연공간으로부터 분리시켜버리고 비행기 여행은 더욱이나 사람을 땅에서 공중으로 떠올려 전혀 새로운 땅으로 옮겨놓아 버린다.
인간의 여행에서 산과 들과 강과 계곡의 풍경이 무의미하여진 것은 언젠가부터 발로 걸어서 길을 떠나는 나그넷길이 사라져버리면서부터다. <여행:旅行>이하는 글자가 의미하는 걸어서 가는 여행은 현대에는 아예 없어져버렸다.
그런데 여기 베르나르 올리비에(Bernard Ollivier)라는 프랑스의 은퇴한 신문기자가 4년간을 걸어서 실크로드 여행을 하였다. 은퇴한 늙은 기자 올리비에는 1999년 5월 6일 자기가 살던 프랑스를 떠나 터키의 이스탄불에서부터 이란과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즈스탄을 거쳐 중국의 신장성, 간수성, 산시성의 옛 당나라 수도였던 시안(西安)까지의 1만 2천 킬로미터의 길고 긴 실크로드의 험난한 길을 혼자서 도보여행(徒步旅行)을 해낸 것이다. 올리비에는 참으로 기인(奇人)이며 그의 도보(徒步) 실크로드 기행(紀行)은 그야말로 기행(奇行)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올리비에가 혼자서 실크로드를 4년이나 걸려서 걸어갔다는 이야기를 읽고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고대의 실크로드 여행자들은 많은 낙타 떼와 말에 각 나라의 진귀한 보물들을 싣고 중무장한 호위 군사들의 보호를 받으면서 거대한 상단(商團)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이 길은 엄청난 위험을 겪으면서 동(東)과 서(西)의 문물(文物)을 이어주고 문화와 종교와 정치의 교류가 이루어졌던 역사 깊은 인류 문명의 큰 길 <비단길: Silk Road>이다.
그런데 한 인간, 그것도 사회적으로는 삶의 일터에서 물러나 이제는 조용하고 편안한 여생을 즐길 수 있게 된 은퇴 노인이 젊고 생기발랄한 청년들도 감히 엄두내지 못할 ‘실크로드 도보여행’을 홀로 해낸 것이다.
나도 지금 80이 넘은 나이에도 세계의 동서남북 많은 나라들을 누비고 다니는 ‘선교 여행자’이다. 그러나 나는 너무도 쉽고 편안하게 이 나라의 공항(空港)에서 저 나라의 공항까지 하늘길을 구름 위로 날아만 다닌다. 내가 비록 나이에 비해 비교적 건강한 신체를 가지고는 있지만 실크로드의 일만 이천 킬로미터를 4년이나 걸려서 걸어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중국의 시안까지 걸어간 (그것도 20킬로그램이 넘는 배낭을 걸머지고) 올리비에의 강한 의지와 기력이 부럽기 짝이 없다.
올리비에는 그의 실크로드 도보여행의 대장정을 마치면서 “마르코폴로 이래로 오직 나만이 실크로드 전체를 걸어서 다녀온 사람이다”라고 적고 있다. 올리비에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긴 여행’을 두 발로 걸어서 해낸 사람이다.
올리비에는 실크로드 도보여행을 시작하면서 옛날 동양을 찾던 서양인들의 신분을 먼저 적었다. 그는 “예전에 동양을 여행하는 서양인들의 대부분은 전도유망한 직종에 몸담기 전 이국 취향에 한번 빠져본다거나 젊은 혈기로 엉뚱한 일을 벌이려는 부유한 집안의 괴짜들이었다”고 비꼬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가정과 직업과 돈에 얽매였던 삶에서 은퇴와 더불어 자유를 얻게 되어 이 길고 긴 도보여행을 떠난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이스탄불에서 출발하여 혼자 걸어서 중국의 시안까지 갈 고독한 여행을 떠올리며 명상에 잠겼다”고 했다. 그는 또 그의 이 여행길의 엄청난 위험을 예상하면서 이렇게 적고 있다. “내심, 나는 중앙아시아의 사막에서 길을 잃는 상상을 했다. 사실, 아나톨리아와 파미르에는 수도 없이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점은 ‘나는 혼자다’라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올리비에는 1999년 5월 13일 옛 비잔티움의 보스포르스해협에 해가 막 떠오를 무렵 20 킬로그램이 넘는 여행보따리 배낭을 메고 이스탄불의 황량한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까지는 3,000킬로미터의 긴 여행길이다.
사람들에게 마을로 가는 길을 물으면 버스정류장 가는 길을 알려주었다. 사람들은 올리비에가 걸어서 여행한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올리비에는 결코 차를 타거나 배를 타거나 하는 일을 하지 않기로 한 원칙을 끝까지 지켰다.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걸어서’ 갈 것, 서두르지 말고 ‘느리게’ 갈 것”이라고 다짐한 원칙을 끝까지 고수했다.
실크로드 국가들은 오스만제국을 이루었던 터키와 이란과 이라크와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 카자흐스탄, 키르키스탄을 거쳐 중국 당(唐)나라 수도 장안(長安)에 이르는 1만 2천 킬로미터가 넘는 길고도 먼 길이다. AD 1000년까지 첫 번째 밀레니엄 기간 동안 세계의 강대국들인 ①당나라제국과 ②투르크제국, ③인도제국, 그리고 ④로마제국과 실크로드는 복잡한 이해관계의 역사적 기복을 겪어온 길이다.
실크로드는 인류 문명 역사라는 거대한 생명체의 등뼈와도 같은 존재이다. 실크로드는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또 다시 국제정치와 에너지 자원과 경제, 그리고 문화와 종교 문제의 중심 지역으로 등장하고 있다.
내가 이러한 21세기 역사 전환기에 세계선교를 선도하여 온 한 사람으로서 프랑스의 은퇴 기자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발로 쓰는 실크로드 기행’을 접하게 된 것은 나에게 매우 큰 충격인 동시에 나의 남은 선교여행길에 새로운 꿈을 꾸도록 하는 커다란 도전이 아닐 수 없었다.
올리비에는 프랑스를 떠나 이스탄불에서 터키를 횡단하여 이란의 국경에 이르기까지 사선(死線)을 헤매면서 고생스런 행로(行路)를 이를 악물고 해냈다. 이란에서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에 이르기까지 고대 실크로드의 노정(路程)에서 겪었던 수많은 희한한 체험들은 더할나위 없이 험난한 것이었다. 카자흐스탄과 키르키스탄을 지나면서 ‘파미르고원’과 ‘사막속의 웅덩이’에서 겪은 이야기와 고비사막의 엄청난 모래바람을 겪던 이야기와, 마침내 모든 고난의 길이 끝나고 ‘천년의 왕국 중국’의 옛 수도 장안, 오늘의 시안(西安)에 이르기까지의 장도(長途)를 마감한 올리비에의 이야기는 장엄하고 엄숙하기까지 하다.
나는 올리비에가 행로(行路)에서 겪은 갖가지 위험과 고생, 그리고 사선을 헤매게 한 무서운 질병의 이야기를 여기서 다 소개할 수는 없다. 다만, 4년에 걸친 도보(徒步)로 정치적으로 가장 위험하고 불안정하고 반서구적인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들의 나라들을 통과할 수 있었던 기적 같은 이야기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한계를 훨씬 초월하는 일이라는 것만은 꼭 적어야 할 것 같다.
나는 항상 나 스스로 선교를 위하여 ‘불가능에 도전하는 삶’을 강조하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내가 지나온 길은 올리비에의 ‘불가능에의 도전’에 비하면 아직 그 가장자리에 불과하지 않았는가 생각하게 된다.
올리비에가 남긴 수많은 명언(名言)들이 있다. 올리비에는 지나가는 나라들에서 만들어진 매우 불완전한 지도를 들고 길을 갔다. 지도에 나타난 지명과 도로 표시는 모두 엉망이었다. 그는 몇 번이고 길을 헛 가기도 하고 쳇바퀴를 돌듯이 한 지역을 맴돌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가지고 있던 GPS로 간신히 가고 있는 방향을 가늠하기도 했다. 경찰이 도둑으로 변하기도 하고 친절하던 사람이 사기꾼임을 훨씬 후에야 깨닫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나라마다 있는 시골의 순박하고 친절한 주민들에게서 수많은 도움을 받기도 한다. 문명의 이기가 거의 없는 저개발 국가들을 단지 걸어서 그것도 걸인(乞人)처럼 허름한 차림의 초라한 백인(白人)의 꼴로 그 험하고 먼 길을 끝까지 해냈다는 것은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올리비에는 그저 먼 길을 간 것이 아니다. 이 실크로드에 얽힌 역사의 흔적을 하나하나 살피면서 그곳을 발로 밟고, 그 옛날 1000여 년 전 대상(隊商)들이 묵던 숙소를 만나면 그곳에서 묵을 수 있으면 그렇게 했다. 창세기의 노아의 방주가 다았던 아라랏 산에 가까이 갔을 때는 기를 쓰고 그 높은 아라랏 산 정상(頂上)에까지 가려고 몇 날을 그 주변을 돌고 돌며 애를 썼다. 옛 성곽을 만나면 그 성의 역사를 더듬어 살피기도 했다. 드넓고 끝이 없는 사막을 팍팍하게 죽기내기로 걸으면서도 그 사막지대에 얽힌 역사를 되새기며 걸었다.
나는 올리비에의 결코 포기할 줄 모르는 그의 끈기에 크게 탄복하고 있다. 사람들이 나를 선교를 위해서는 꽤나 끈질기게 포기를 모르는 사람으로 여기는 것을 느끼면서 살았고 나도 그런 사람으로 자처하면서 살아왔지만 올리비에와는 도저히 비견(比肩)할 수 없다.
나는 올리비에의 절대 불포기(絶對不抛棄)의 정신을 배우고 있다. 나는 쉽게 좌절하고 체념하는 버릇이 있는 나의 유약함을 더 절실히 깨닫고 부끄러워한다.
나는 그가 실크로드를 처음부터 끝까지 걸어서 간 이야기를 읽으면서 경탄하고 전율한다. “그의 결심과 목표를 이루려는 고집은 쇠심줄보다 더 질겼다.” 이 말은 그의 실크로드 기행을 읽은 한 독자의 고백이다.
나는 올리비에의 실크로드 기행에서 사도 바울의 ‘발로 쓰는 선교기행’을 머리에 떠올린다. 나는 또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신의 어머니: The Mother of God’이라고 규정한 AD 431년의 에베소공의회의 결의를 거부한 콘스탄티노블의 메시아교회의 대주교 네스토리우스(Nestorius)가 하란광야로 추방되었던 여행길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를 따르는 네스토리안학파(Nestorian School)가 네스토리안 교회를 형성하여 실크로드 국가인 이라크와 이란과 중아아시아를 거쳐 중국(唐 )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파한 AD 1000년까지의 네스토리안 선교의 불굴(不屈)의 선교 대장정(宣敎大長征)을 이 포럼 참가자들이 회상하기를 바란다.
Ⅰ. 강대국들의 전쟁과 ‘실크로드’
세계 역사의 패러다임은 세계대전을 통하여 전환되어 왔다. 서구 세력이 세계 역사를 주무르던 시대는 제 2차 대전으로 종언(終言)을 고하기 시작했다. 그 이전의 세계대전은 지구의 3분의 1이나 절반에서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에 진정한 ‘세계전쟁’은 못 되었었다. 제 2차 세계대전의 규모는 유럽의 동과 서와 맛 붙고, 동아시아의 섬나라 일본이 중국과 미국과 유럽 식민지 모든 지역에서 충돌한 동서의 모든 대륙과, 대서양과 태평양과 인도양에 걸쳐서 치렀던 진정한 의미의 세계대전이었다.
제 2차 세계대전은 두 개의 원자폭탄 투하로 끝을 맺었다. 세계 역사는 핵에너지 시대로 전환된다. 그러나 이 전쟁은 근대, 곧 20세기의 전쟁 이야기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
역사상 최초의 유럽세계의 강대국은 로마제국이었고, 몽고의 징기스칸과 그 후예가 전쟁으로 유럽과 아시아의 중국(당나라)까지 통치하던 몽고제국의 시대로 바뀐다.
‘실크로드’는 유럽과 아시아를 통틀어 일컫는 ‘유라시아’를 관통한 무역로(貿易路)를 말한다. 유럽인들과 중앙아시아인들이 아직도 짐승의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고 살던 시대에 중국에서는 목화(木花)로 무명실을 뽑아서 천을 짜서 옷을 지어입고 살았고, 누에를 길러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내어 명주비단을 짜서 화려한 비단(緋緞)옷을 지어입고 살았다.
이 값진 비단을 구하기 위하여 유럽 로마의 대상(隊商)들이 로마의 수도 콘스탄티노블에서 투루크제국과 패르시아와 아프가니스탄,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 타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키스탄, 카자흐스탄 같은 세계의 지붕을 관통하는 사막의 황야와 거칠고 험한 고원지대를 지나 중국 당나라의 수도 장안(長安)까지 가서 비단무역을 한 것으로 인하여 유럽인들은 이 무역로를 ‘비단길’ 곧 ‘실크로드(Silk Road)라고 불렀다. 위에서 말한 실크로드 일대의 주요 국가들은 AD742년부터 755년 사이에 있었던 국가간의 분쟁과 정치적 변동에 이어 나타난 국제무역과 문화교류로 말미암아 탄생한 국가들이다.
이 시대의 유럽과 아시아를 이어주는 무역로 실크로드는 단순한 국제무역의 길로만 끝인 것이 아니다. 동역과 서역의 문화와 종교가 교류되는 문명의 교차로가 실크로드였다. 동방의 문화와 종교가 서방으로 이동하고 서방의 문화와 종교는 동방으로 스며들던 시대에, 실크로드는 네스토리안파 기독교를 중국땅을 거쳐 신라까지 전래(傳來)시킨다. 아라비아의 이슬람 종교는 이 길을 통해 아시아의 중국과 한반도까지 이동한다. 남방(南方) 서남아시아의 불교와 마니교도 실크로드를 통해 중앙아시아에 흘러들었다.
Ⅱ.‘실크로드’유라시아 문화 교류 역사의 지정학적
(地政學的: Socio-Political) 시간표
지난 2000년, 유럽은 중동(中東)에서 탄생한 기독교를 서구 문명으로 정착시키고 유럽 밖의 세계로 기독교 문명을 확장시켜 왔다. 그것은 주로 전쟁과 침략과 정복의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순수한 복음의 확장 세력은 이러한 세속 권력들의 전쟁과 침략과 정복의 야망을 초월하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절대적 권능에 속한다. 로마제국의 박해와 핍박이 도리어 그리스도의 증인들을 세계로 흩어지게 했었다. 흩어진 무리들은 로마 지배하의 모든 땅으로 흩어져 복음을 증거하는 세력이 되었고, 박해자 사울은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변신하였고 목음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유럽 모든 땅으로 전파된다.
베드로가 바벨론에 교회를 세웠다는 기록도 있고 바울이 스페인과 프랑스와 부리타인(영국)까지 갔었다는 기록도 있다. 빌립은 북쪽 아시아에까지 이르렀고 바돌로메는 인도와 알메니아까지 갔고 마태는 아라비아와 에디오피아까지, 도마는 인도를 지나 실론(Ceylon)까지 갔다는 설도 있다. 시몬은 이집트와 구레네와 리비아를 거쳐 아프리카의 다른 지역과 부리타인(영국)까지 갔고, 유다는 소아시아와 그리스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했다.
폭군 네로 황제의 기독교 박해 이후 기독교는 실크로드를 거쳐 로마제국 통치권 밖으로 퍼져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을 지나 황해(黃海) 곧 서해(西海)를 거쳐 한반도에까지 이른다. 기독교 선교의 역사는 전쟁과 박해와 추방을 우군(友軍)으로 삼아 순교자의 시체를 쌓으면서 세계를 정복한다.
중앙아시아 민족들의 주류인 ‘훈족’이 AD 5세기에 유럽을 침공하고 투르크족은 AD 1000년에 터키 ‘아나톨리아’로 침공하고 몽골제국은 AD 13세기부터 유럽을 침공하였다.
실크로드의 중심은 중앙아시아 민족들은 이러한 유럽과 아시아의 상호 침공의 오랜 역사 속에서 형성되었기 때문에 지금도 그들의 민족적 기원이 동양인지 서양인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중국은 BD 3세기에 이미 중앙아시아를 지배하고 있었고 지금도 중국은 이 중앙아시아를 중국의 서역(西域)이라고 부른다.
중앙아시아의 실크로드에는 36개의 거대한 성곽도시가 있었고 그 도시들은 세계의 부와 교역과 문화 교류의 중심지대였다. 현대의 중앙아시아는 인종과 언어와 문화와 종교의 가마솥이 되어 있다.
중앙아시아의 서쪽은 구소련 러시아에 속해 있었지만 AD 2000년 이후 러시아는 중앙아시아와 함께 <아시아의 러시아>가 되고 싶어 했다.
투르크족 곧 터키인들의 중앙아시아는 <아시아의 터키>로써의 위치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세계는 지금 ‘실크로드’의 중심지대 <중앙아시아>를 <중국의 투르키스탄>을 만들 것인가, <러시아의 투르키스탄>을 만들 것인가, <유럽의 투르키스탄>을 만들 것인가로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야심찬 발길로 들끓는 것이 오늘의 ‘실크로드’ 유라시아의 지정학적(Socio-Political) 시간표(timetable) 이다.
Ⅲ. 21세기 선교의 바이블로드로 만들기 위한 ‘실크로드’
<중앙아시아>의 지정학적 (Socio-Political) 중요성
21세기 미국의 세계 지배의 중심 목표는 유라시아 일대이며 그 중심은 캐스피안 해 주변의 중앙아시아 국가들이다. 중앙아시아라는 교두보가 미국에 대하여 지정학적 중요성을 가지는 것은 캐스피안 해 일대에 매장된 엄청난 양의 석유 에너지원이 그 첫째 이유이며, 거대 국가 러시아와 중국과 유럽연합을 관리하는 데 절대로 빼앗겨서는 안 될 지정학적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나 이라크 침공은 미국의 세계 지배의 중심 목표인 중앙아시아의 자원을 미국화하기 위한 <석유 에너지 루트>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 근본 목표이다. 이것은 유라시아 실크로드 일대가 21세기 미국의 세계 전략지대의 최우선 목표인 것을 증명한다.
세계의 패권은 미국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유라시아 중앙아시아 발칸 지역을 관리하고 자국의 영향권 아래 둘 수 있는가에 따라 판가름 난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옛 ‘실크로드’ 중앙아시아는 지정학적으로 중요하다.
미국은 지중해 끝의 리스본에서 한국의 동해를 통하여 태평양으로 나아가는 항구, 시베리아의 블라디보스톡에 이르는 거대한 유라시아의 복판에 자리잡은 중앙아시아를 미국의 정치, 군사, 경제적 품안에 품겠다는 21세기 세계전략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지정학적 21세기 패권 전략은 러시아, 프랑스 독일, 중국, 인도 등이 경합을 벌이면서 미국을 견제하고 있다. 영국, 일본, 인도네시아는 이들 국가들에 이러 유라시아, 중앙아시아에 야심을 가진 국가들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 선교 전략가들은 이러한 미국의 세계 패권 전략에 편승하여 ‘실크로드 선교전략’을 개발하고 있다.
지난 20세기 말부터 ‘10/40 Window’를 미전도종족 선교전략지대로 설정했던 서구 선교세력들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북위 35도에서 45도를 가로지르는 ‘35/45 Window’를 <투르크윈도우:>라는 이슬람 선교의 새로운 전략 통로(通路: Gateway)로 내세우기 시작했다.
지난 AD 10세기 십자군전쟁이라는 엄청난 정복적 선교의 시행착오를 겪은 서구 기독교가 21세기의 이슬람 선교 전략으로 내세우는 <투르크윈도우: 35/45 Window>가 과연 순수한 선교적 동기로부터 출발한 것인가는 위에서 설명한 ‘미국의 21세기 패권 전략’과 맥을 같이 하는 공동전선(共同戰線)이 아닌가 하는 의혹 때문이다.
지난 19세기 이후 200년 동안 서구 선교는 자국 정권의 식민지 팽창세력의 길을 따라서 진행되었었다. 이러한 선교는 탈식민지 신생 독립국가에서 철저하게 비난받아 왔다.
20세기 후반 비서구 세계, 탈식민지 신생 독립국가들로부터 일어난 새로운 선교세력은 지난 세기 식민주의 시대의 서구 선교 세력의 ‘계승세력(succeeding force)’이 아니라 ‘대체세력(alternative force)’이다.
우리는 ‘21세기 실크로드를 바이블로드로 전환시키는’ 선교를 위한 과업을 위해 비서구 선교 세력간의 상호 협력과 연합 활동을 위한 새로운 전략을 개발해야만 한다. 실패한 지난 1000년의 서구 선교 세력의 이슬람 선교의 길을 답습해서는 안 된다. 지금 형성되고 있는 이슬람 사회 속 기독교 신앙공동체를 어떻게 충돌 없이 계속 성장시킬 것인가를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새로운 선교전략을 연구하여 개발해 나가야만 한다.
1990년 이후 우리에게 지워진 ‘실크로드’ 중앙아시아의 이슬람 선교사 또 다시 강대국들의 패권 전략에 악용된다면, 이것은 21세기 선교역사를 더럽히는 엄청나게 무서운 과오가 될 것이다. 탐욕과 국가 이익의 도구로서의 선교가 되었던 20세기까지의 오욕된 서구 선교전략과의 단절, 정복과 착취와 지배의 국가주의가 선교의 방법이 되었던 피비린내 나는 정교(政敎) 유착과의 단절 없이는 <실크로드 BS 바이블로드> 선교의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낼 수 없다.
서구 문명 이식으로서의 선교, 문화 우월주의, 민족 차별주의, 경제 제일주의가 판치는 서구 문명과의 차별성을 가진 순수한 복음의 선교는 ‘평화’와 ‘화해’ 그리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만을 나누어 주는 순수한 새로운 물줄기를 만들어 냄으로써만 ‘실크로드를 바이블로드’로 전환시키는 선교의 과업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걸어서 실크로드 일만 이천 킬로미터의 대장정을 도보(徒步)로 이루어낸 올리비에의 불포기(不抛棄) 정신과 콘스탄티노블 메시아교회 장로였던 네스토리우스(Nestorius) 대주교를 따르던 네스토리안 학파가 콘스탄티노블에서 당나라 장안까지의 실크로드를 ‘Gospel Road’로 만들었던 그 불굴의 선교열정을 계승할만한 용기와 끈기가 있어야만 이 대 사역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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