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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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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대학생 > |
등록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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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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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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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엽 (taisa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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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교육-남성 12. 한국 아버지와 이스라엘 아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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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권위는 어머니가 만들어주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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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들이 그렇게 되기까지는 여성들에게도 피할 수 없는 책임이 있다. 잘못 받아들여진 남녀 평등 주장이 그렇고, 아이들을 유약하게 키워온 우리 어머니들이 그렇다. 직장에서 여성들은 승진이나 호봉 등 이로운 면에서는 자기들의 권리를 내세우면서, 힘든 일이나 좀 지저분한 일에는 반드시 여성 보호론을 펴는 것이다. 최근 남성들까지도 기피하고 있는 술이나 담배까지도 남녀 평등의 입장을 받아들이고 있는 여성들이 많다.
이스라엘 여성들은 90% 이상이 사회 활동을 한다. 그래서 가정 생활은 기본적으로 철저하게 분업화 되어 있고, 남성들도 불만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여성의 사회 취업률이 극히 적을 뿐 아니라, 결혼하면 대부분이 가정에 머무른다. 물론 사회의 불평등 구조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겠지만, 여성들 스스로 잘못된 의식에서 기인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 이유로 동반자적인 관계에서 적대 관계로 잘못 인식되는 여성 운동이 싹트는 것은 아닌가.
거창한 여성 운동이나, 남성의 권리 찾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가정에서의 아버지 위상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일이 바빠서, 남자가 할 일이 아니라서, 이런 저런 핑계로 아이들 교육에 무관심한 남자들이 늘어가면서 우리의 교육은 반쪽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미 태어날 때부터 역할이 주어지듯이 가정에서도 남녀의 역할이 주어져 있다. 따뜻한 정신을 싹 틔우고 키워주는 것이 어머니의 역할이라면, 아버지는 아이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것이다. 어느 통계에서도 나와 있듯이 문제아의 대부분은 그 가정의 경제적 환경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불화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우리가 반드시 생각해야 할 부분이다.
이스라엘의 여성들은 군 복무를 해서 그런지 우리 나라의 여성들에 비해 매우 거칠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그러한 여성들도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만큼은 결코 남편에게 명령하거나 큰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만큼 아이들의 교육에 신경을 쓰는 것이다.
형식적인 면만 바라보면 이스라엘의 남성들은 매우 불행하게 보인다. 퇴근 후에는 모든 시간을 가족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 불문율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집안 청소, 밀린 빨래, 아내가 안 돌아오면 음식까지 준비해야 하는 것이 이스라엘 남성들이다. 그렇다고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자기와 마찬가지로 직장에서 온종일 시달리다 왔기 때문에 눈치를 살피는 경우가 많다.
▐ 그러나 우리가 볼 때 그들에겐 좋은 점이 있다. 거실의 소파, 식탁의 의자에도 아버지의 자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 자리에 대한 권위는 엄격해서 아버지가 출장으로 몇 달간 자리를 비워도, 아이들이 장난을 칠 때에도 결코 앉을 수 없다.
이스라엘 남자들에게는 또 하나의 권위가 주어진다. 바로 가족 회의에서의 최종 결정권이다. 이러한 자리는 아버지 스스로가 만든 것이 아니다. 그러한 권위는 어머니가 만들어주는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도 아버지의 권위를 생각한다.
어머니가 아이에게 물 심부름을 시키자 물 한 그릇을 떠다가 어머니에게 드린다. 그러면 어머니는 아주 부드럽게 타이른다. “아빠게 먼저 가져다 드려야지. 아빠가 가장이시잖니. 그러니까 아빠가 드신 다음에 엄마가 마시는 거란다.” 부부가 둘만 있을 때에는 거칠기만 한 아내가 아이에게 가장의 권위를 인지시켜줄 때에는 이렇게 부드럽게 행동하는 것이다.
“아빠, 재미없어. 다른 놀이해요.”
“그럼 무슨 놀이를 할까?”
“그림 그릴래요.”
“그림 그릴 도구가 필요하겠네? 무엇 무엇이 필요할까?”
“크레파스 으음.. 그리고.. 아빠 다리요.”
“숲 속에서 노는 것을 그릴려구요. 아빠 다리에는 털이 많으니까, 나무는 안 그려도 되잖아요.” “아하, 그렇구나. 참 좋은 생각이다.”
웬만하면 짜증을 낼 법도 한데, 아이가 빈틈이 없을 정도로 시커멓게 칠해 나가도 전혀 싫은 기색을 나타내지 않았다.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이 즐기는 표정이었다.
우리의 아이에게도 아버지의 자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아이와 아버지가 즐겁게 노는 모습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이 세상에 또 어디에 있겠는가? 아내들은 반문할 것이다. “스스로 권위를 포기한 게 누군데, 아내만 책임을 져야해?” 하지만 작은 일부터 아버지의 권위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은 아내밖에 없지 않은가? 그렇게 작은 일로부터 아버지의 자리를 지켜줄 때, 더 이상 방황하는 남편은 없을 것이다.
출처: 류태영, 천재를 만드는 유태인의 가정교육법(국민일보, 2001), 296-302.
정리: 정종엽 리포터 keepyouru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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