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전 7:4)고 하신 것처럼 미션매거진 창간호에 이 땅에 묻힌 외국인 선교사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100여 년 전에 낯선 땅에 와서 죽기까지 복음을 전한 사람들, 죽어서도 이 땅에 묻히기를 소망했던 사람들 그들을 우리가 어찌 잊겠는가. 그래서 양화진은 이 땅에 사는 신앙인의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1882년 3월 한미수호조약에 이어 한영, 한독 수호조약이 체결되면서 조선 조정이 이제까지의 쇄국정책을 버리고 구미열강과 외교관계를 맺게되자 각국 외교사절을 비롯한 외국 인사들과 서구의 문물이 속속 바다를 건너 유입되기 시작했다.
1884년 최초의 미국 의료선교사 알렌(H.N.Allen, 1858-1832)이 입국한데 이어 다음해엔 H.G. 언더우드와 H.G. 아펜젤러가 입국하는 등 미국의 선교사들이 잇달아 내한하여 의료사업과 교육사업을 일으키면서 선교활동도 아울러 전개했다.

양화진의 첫 무덤

1885년에 입국하여 알렌과 함께 광혜원(廣蕙院)에서 의료사업을 하던 선교사 J.W. 헤론이 내한 5년만인 1890년 7월 26일 급환으로 세상을 떠나 서울에서 숨진 최초의 서구인이 되었다. 1883년에 개항한 인천에는 당시 외국인묘지가 마련되어 있었으나 한여름 염전에 교통마저 불편하여 그곳까지 시신을 옮겨 장례를 치를 수 없었다. 선교부가 조선조정에 이같이 사정을 밝히고 서울 가까운 곳에 묘지를 지정해 주도록 요청하자 조정에서는 한강건너 야산기슭 모래밭을 제공했다. 이곳은 도저히 묘지를 쓸 수 없었고 민간에서도 외국인 시신을 묻으면 재앙이 내린다고 두려워하여 묘지를 매입할 수 없었다. 왕궁에서 30리 이내에는 묘를 쓰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지되어 있기도 하였다.

이에 선교사들은 궁여지책으로 조선인 서생들이 합숙을 하며 언더우드와 헤론의 성경번역과 사전편찬을 도와주던 집 한편에 무덤을 쓰려고 했으나 서생들이 문책 당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결사적으로 반대하여 뜻을 이룰 수 없었고, 급기야는 시신을 밀봉, 헤론의 집 뒤뜰이나 정동 선교부 구내에 임시로 묻으려고 했으나 역시 서생들의 반대로 좌절됐다.



이같이 묘지마련을 못해 고통과 초조 속에 수 삼일이 지나게되자 조정과 미국공사관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있던 알렌이 백방으로 절충을 벌인 끝에 조정으로부터 양화진을 묘지로 사용토록 허가를 얻어 이곳에 외국인을 위한 전용 묘지가 마련되기에 이르렀다.

이 때부터 헤론의 묘를 비롯해 최초의 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의 가족묘지, 최초의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의 가족묘지, 헤이그에 밀사로 파송 되었던, 헐버트, 대한매일신보의 창설자 베델, 세브란스 병원장 애비슨 박사의 묘 등 약 500개의 무덤이 있어 이 나라 초기 서구문화 전래의 역사를 말없이 일러주고 있다. 순수한 선교사의 무덤은 111기인데 이중에 36기가 선교사 자녀들이다. 이들은 본국에서라면 죽지 않았을 것인데 열악한 환경인 이 땅에 부모를 따라 아무 것도 모른 체 와서 병으로, 혹은 사고로 숨져 이곳에 묻혔다.